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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마루:: 원래 여름이란, 파도를 걸어가는 것 리플레이 로그

루은07 2023. 10. 9. 00:06

향님 템플릿 사용

 

  • 쌍둥이 가족관으로 개변했습니다.
  • 내용 개변 일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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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에게 여름이란, 커다란 파도를 걸어가는 것.
 
이루어지지 않을 것만 같던 열여덟. 우리의 이야기.
 
원래 여름이란, 파도를 걸어가는 것.
 
“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
 
지루하고 따분한 수업이 이어집니다. 미르는 현재 교실 뒷편 창가에 앉아있습니다.
 
깔끔한 교실과 학교. 정말 오랜만에 오는 학교입니다.
 
비단 몸이 좋지 않아서 결석이 많았다... 그런 의미가 아님을 지금의 미르는 알고 있겠죠.
 
미르:( 끄덕끄덕 )
 
언제 시간이 어렇게 됐을까요. 고등학교 2학년인 미르는 당연하듯 앉아있습니다.
 
교실은 2층. 창 밖을 살펴보면 넓은 운동장이 한 눈에 보이고 나무로 세워 만든 그늘과 의자가 놓여있는 쉼터를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운동장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한적하고 조금은 소란스럽습니다.
 
학생들이 모여 축구를 하고 있습니다. 이 선명한 여름 날이 덥지도 않은 걸까요?
 
미르:( 난 운동장에 서있기만 해도 마루가 튀어나오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다가 상상해보더니 피식 )
 
아마 그렇겠죠. 이런 무더운 여름날에는 더더욱.
 
10년 전으로 돌아왔어도 달라진 게 없습니다. 똑같은 미르의 자리. 선생님과 학생들. 학교.
 
이 상황이 반갑다고 하기엔 미르는 단 하나. 달라진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세상이 멸망했다는 사실과 경험. 그리고 미르, 자신이 그 때 죽었었다는 것이죠.
 
숨이 꺼져가고 눈 앞이 어둠에 잡아먹혀 더 이상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되었을 때,
 
미르를 관통한 것은 바로 마루가 자신을 깨우는 소리였습니다.
 
어떤 상황이었을까요? 세상의 마지막은, 미르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생각(날조)해볼까요?
 
미르:( 내 마지막 모습. ... 처량했겠지, 아마도. ... 허약한 몸으로 매마른 바닥에 누워서 힘없이 그저 늘어진 채 있었겠지요. 마루에게도 보여주지 못해 혼자서... 그러지 않았을까 싶네요. )
 
그렇다면 마루는 미르를 간신히 발견해 불러보았는데도 그 순간이 바로 죽기 직전의 모습이었겠네요.
 
멸망은 예기치 않게 모든 것을 매마르게 삼켰습니다.
 
미르:( 나까지도 삼켜버렸지.. )
 
그런 미르가 다시 눈을 떠보니 끝없는 어둠이 아닌 모두가 하교 하고 난 후의 텅 빈 교실 책상에 앉아 잠을 자고 있던 스스로의 모습과 마주했습니다.
 
물론 납득 할 수 없었죠.
 
이해 할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미르, 당신은 다시 돌아온 이 과거에 살고 있습니다.
 
멸망했던 세상의 끔찍한 모습도 없고 모두 다 죽고 황량한 세상 위에 절망적인 상황도 없습니다.
 
미르:( .... 또 그런 일이 시작되지 않길 바라는 수밖에 없겠네... )
 
그런 희망과 바램을 가지며 하루를 보낸 뒤의 오늘, 여전히 이것은 꿈이 아닌듯합니다.
 
교탁을 앞에 두고 서 있는 선생님을 오랜만에 봅니다. 어른이 되고 나서 소식도 알 수 없었던 반 학생들의 모습 역시 낯설지만 익숙합니다.
 
수업이 끝나면 항상 그랬듯 마루가 올테죠.
 
미르:( 끄덕끄덕... )
 
마루는 알고 있을까요? 열여덟, 여름.
 
아직은 어리광 부리고 싶으면서도 내년에는 각자의 길을 결정해야되는 애매모호한 가운데의 순간.
 
미르:( 나보다 똑똑하니까 더 잘 알고 있지 않으려나. )
 
미르도 충분히 똑똑한걸요.
 
미르:( 그래도 난 못 배운 게 많잖아요, 마루보다 학교 빠진 일자도 많고. )
 
라고 말해도, 이건 지능과의 별개겠지요. 시간의 흐름과, 세월이 만들어내는 일순간을 눈치채는 감성.
 
이런! 그래도 지금은 이렇게 학교에 있잖아요. 몸도 수업 듣기에 괜찮은거 같고요.
 
미르:( ... 그래도 안 들을 것 같은ㅇㄷ... )
 
어쩌면 학교를 많이 빠진 그 때의 후회가 있어서 되돌아갈 기회가 생겼다거나, 그런 판타지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겠어요.
 
그런 미르는 기억하고 있을까요? 고등학교 2학년. 청춘의 한 가운데의 여름.
 
아이는 어른이 되고 독립을 하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둘이서 하나로 지내자며,
 
푸른 하늘 아래에서 서로를 위한 쌍둥이로 사이좋게 지내자는 말과 함께...
 
어릴적 그 때와 똑같이 웃고, 앞으로도 웃을 날을 많이 만들자던 그 순간이 여름빛이 비추어.
 
때문에 여름은 특별한 계절입니다. 우리들이 앞으로 살아갈 방향을 결정한 시간이니까요.
 
미르:( 기억 못할 리가 있나요. 어제 금방 말한 것처럼 생생한데. )
 
생생한 기억 속, 그렇다면 미르의 예상대로 이틀 뒤면 여름 방학입니다.
 
조사 가능한 구역은 [ 교실 ] [ 교과서 ] [ 책상 ] [ 선생님 ]입니다.
 
미르:( 교실부터 둘러봅니다. )
 
평범하고 깔끔한 학교 교실입니다.
 
이제 막 오후를 지난 시간. 머리 끝 까지 올라선 태양 때문에 교실 안은 그야말로 쨍쨍합니다.
 
책상에 엎드려 졸고 있는 학생도 있고 수업을 열심히 듣고 있는 학생들도 존재합니다. 서로 쪽지를 주고받거나 말장난을 하는 녀석들도 있습니다.
 
미르:( 이런 분위기가 그리웠긴 해. 병원에서는 어떻게 보겠어. )
 
조금 멀리 떨어진 칠판에는 높아지는 온도 때문에 일사병에 걸릴 때를 대비하여 배부된 유인물이 붙어있습니다.
 
관찰력 판정 해주세요.
 
미르:
관찰력
기준치: 85/42/17
굴림: 2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오~
 
미르:( 코쓱 )
 
미르가 앉아 있는 곳에서 칠판은 그리 가깝지 않기에, 칠판에 붙어있는 유인물을 확인하기까지 약간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약간의 노력(성공함)
 
유인물에는 <일사병 예비 방법> 이라고 적혀있습니다.
 
그 아래 부제목이 적혀있습니다. [■■까지 앞으로 10년]
 
미르:( ... 뭐가 10년...? 빠아안 )
 
가려진 글자가 무엇인지는 앞 사람 때문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나중에 수업이 끝나면 확인해도 되겠지요.
 
미르:( ... 치이... 포기합니다. 쉬는 시간에 봐야지 )
 
다음은... 어디를 둘러보나요?
 
미르:( 그다음으로 교과서를 봅니다. )
 
지금은 문학 시간입니다. 미르의 국어 교과서는 잘 있을까요?
 
미르:( 깨애애끗 )
 
...필기도 없나요?
 
미르:( 하나도 없네요... )
 
저런. 시험은 어떻게 봤었을까요...
 
미르:( ... 찍어서....? )
 
마루 울겠어요.
 
미르:( 마루가 보여주겠지라는 마음으로 미안해 마루야 )
 
하긴, 병원에 있는 날이 많았을테니 필기를 한다고 해도 다른 노트에 적어 놓았을수 있겠네요.
 
아니면 마루가 보여줬거나요.
 
미르:( 마루가 다 적어뒀겠지 히히. )
 
깔끔하고 깨끗한 교과서에는 문학 주제가 적혀 있습니다.
 
오늘 작문 주제는 「여름」입니다. 열여덟의 여름이 곧 시작되어서 그런걸까요?
 
여름. 여름...
 
학교를 졸업하고 마루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생각이 납니다.
 
우리들은 10년 동안 똑같은 삶을 살게 되겠죠.
 
똑같은 곳에서 서로 같은 모습을 하고, 아홉 번의 여름을 더 맞이할거고,
 
그때마다 내리쬐는 햇빛이 만든 그림자를 보게 될 겁니다.
 
겨우 얼마 안 가 방학이지만, 다음 문학 시간까지 여름을 주제로 글을 써오는 게 숙제라고 합니다.
 
미르:( 으에... 숙제 싫어.... )
 
다른 학생들도 미르와 똑같은 반응입니다.
 
늦지 않게 도서관을 가서 책을 찾아보거나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읽어 두는 게 좋을 듯 합니다.
 
미르:( ... 그날 병원 가서 빠지는 상상)
 
병원이 탈출구죠 아주 그냥~(미르 꾹 누르기)
 
미르:( 눌려짐 으에 )
 
미르 호떡.
 
미르 호떡은 다음으로 무엇을 살펴보나요?
 
미르:( 미르 호떡.... )
( 책상을 둘러봅니다, 일단은... )
 
미르의 책상입니다. 미르의 책상 위는 어떤 모습인가요?
 
미르:( 필통, 교과서, 물통이 끝이네요. )
( 깔끔한 책상 위에 필요한 것 말고는 올려두지 않았습니다. 뭐, 올려둘 것도 마땅히 없기 때문일까요.)
 
이 시기의 학생들의 필수품인 손풍기나 손거울이나 데코 스티커도 없었을까요?
 
미르:( 아무것도 없을 것 같네요. 아마도... 몰랐을테니까... )
 
주변 학생들의 책상 위는 저마다의 개성으로 가득찼지만,
 
미르의 책상은 상대적으로 개성이 옅었겠네요.
 
미르:( 끄덕... )
( 어차피 많이 안 앉아있으니까 )
 
하지만 깔끔하게 정리된 책상 위야말로 미르의 개성일수도 있어요.
 
창문 근처에 앉아서 그런건지, 창문이 만들어낸 일직선의 그림자가 미르의 책상에 경계선을 그리며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미르:( 햇빛 쨍쨍하네.... 나가고 싶다. 늘어지기... )
 
물통에는 햇빛이 반사되어 흰 점을 만들어냅니다.
 
흔들리는 푸른 잎들이 깔끔한 책상 위에 자신의 흔적들을 새겨놓는듯 합니다.
 
책상 사물함 안에 손을 넣으면... 미르가 보통 넣어놓은 물건들이 고스란히 있습니다.
 
미르:( ... 뭐 넣어뒀더라. 뒤적여봅니다. )
 
뭐가 있을까요?
 
GM의... 러브레터?
 
미르:( ... 세상에나 )
( ... 교과서 몇 개랑 건네지지 않은 통신문들이 가득하네요 )
 
책상 위와 다르게 책상 밑은 어수선하네요.
 
미르:( ... 정리해야할텐데 )
 
학기가 끝나가니까 정리해봅시다.
 
미르:( ... 쉬는시간에. ... 뒤로 미루기 )
 
다음은 어디를 살펴보나요?
 
미르:( ... 힐끔 선생님을 바라봅니다 )
 
힐끔, 수업 중인 선생님을 바라봅니다.
 
선생님은 교탁에 서서 칠판에 분필로 글씨를 적으며 수업을 하고 계십니다.
 
작문 수업이지만 어쩐지 지금 하시는 말씀을 듣고 있자면 옆길로 좀 샌 것 같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 포도라느니. 지구가 멸망할 때 사과나무가 아니라 포도나무를 심을거라느니…
 
미르:( 피식 )
 
자신의 말을 쭉 이어나가던 선생님은 문득 미르와 눈이 마주쳤는지 미르에게 질문합니다.
 
선생님: 너는... (꽤 수업에 잘 안나왔을테니 이름을 잠시 기억해보곤) 미르 맞지? 미르. 너는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무엇을 할거니?
 
선생님은 물론 반 아이들의 시선이 미르에게 몰립니다.
 
오랜만에 나름 건강하게 학교에 온 미르를 위해 선생님이 질문했을 수도 있겠죠.
 
모든 학생들이 미르의 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쉬는 시간이 다 되가는지, 교실 창밖을 보면 마루가 늘 입던 체육복을 입고 미르를 향해 짧게 손을 흔듭니다.
 
미르:네, 네...! 미르 맞아요. ( 시선 몰린 거 처음이라 긴장한 듯 멈칫하더니. ) ... 지구가 멸망한다면... 으음.... ( 마루 흘끔. )
 
활기차게 웃는 마루의 수업은 체육이었나 보네요.
 
미르가 질문에 대답 할 때까지 수업을 마쳐주지 않을 작정인지 오늘따라 선생님은 이상하게도 미르의 대답을 재촉합니다.
 
...그러게나 말이에요. 미르는 지구가 멸망한다면 멸망하기 전, 무엇을 할 건가요?
 
미르:( ... ) ... 저, 저는 그냥 가족들이랑 시간 보낼래요. 멸망하기 전에 그냥... 집에서 평범하게 밥 먹고 저녁에 도란도란 모여서 티비도 보고...
 
선생님은 미르의 대답에 온화한 미소를 짓습니다.
 
미르:( 휴.... )
 
선생님: 좋은 의견이구나. (다른 학생들을 보면서) 너희들도 모름지기 가장 옆에 있는 가장 소중한 사람과 함께 있는 매 순간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단다.
 
미르가 선생님의 질문에 답을 하고 나면, 수업의 마무리를 알리는 종이 학교 전체에 울려퍼집니다.
 
수업이 끝난 후, 마루를 만나러 가기 위해 자리에 일어난 미르는 칠판 앞으로 가 붙어있는 유인물을 제대로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확인해보실건가요?
 
미르:( 확인하러 일어나서 유인물에 다가갑니다. )
 
일사병 예비 방법. 그 옆에 쓰여있는 가려진 글자는...
 
멸망까지 앞으로 10년.
 
미르:( ... 뭐지....? )
 
혼란스러운 유인물을 본 미르, 산치체크입니다. 0/1
 
미르:
SAN Roll
기준치: 26/13/5
굴림: 70
판정결과: 실패
 
미르 왜 산치가 30이 아니예요
 
...회귀했으니까 기초치 30으로 하고 다시 굴려주세요!
 
미르:
SAN Roll
기준치: 30/15/6
굴림: 69
판정결과: 실패
 
이성 -1...
 
미르:( 아양 )
 
이구ㅠ
 
미르는 무엇을 하나요?
 
미르:( ... 일단 마루에게 가보기로 합니다. 마루네 반에도 저렇게 되어있나 싶어서 )
 
미르가 마루를 만나기 위해 교실 밖으로 나가면 마루는 물에 조금 젖은 체육복을 입고 미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학교는 곧 시작될 여름 방학 때문에 분주합니다. 아이들은 자주 소란스러워지고 학교는 기대감에 들뜬 듯한 어지러운 분위기.
 
복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쉬는 시간이 되자 반에서 나와 복도에 삼삼오오 모여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자주 보입니다.
 
미르:( 방학은 방학이구나.... 마루네 반 찾아 총총총 )
 
마루:(복도에 서있다가 자기네 반으로 가려는 미르 보고 ?함) 미르야, 어디가?
 
미르:아, 마루야! 너네 반 가고 있었어.
 
마루:(날 못봤구나.... 은은하게 웃어요. 그런 착각을 하고있답니다.) 우리 반, 방금 체육해서 아직 교실에 돌아온 애들 별로 없는데 누구 찾아?
 
미르:없으면 다행이네. 그냥 반에 붙어있는 유인물만 보려고. 우리반 유인물에 이상한게 적혀있어서 말이야. 너희 반도 그런가 싶어서 확인해보려고.
 
마루:응? 유인물? 누가 낙서라도 했어? ...(미르 빤.) 수업에 집중 안하고 다른 곳 보고 있었지? (그래도 반에 가자는 말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얼른 가자고 말합니다.)
오늘 날이 덥긴하더라, 몸은 괜찮아?
 
미르:아, 아니 그게 아니라 쉬는시간 되고 나서~ 반 앞에 붙어있길래. 여, 열사병떄문에! ( 끄덕끄덕 두가지 의미로 다 괜찮다는 듯. ) 오늘은 몸 괜찮아. 많이 안 아파.
 
마루는 괜시리 속보이는 말을 하며 미르를 보고 웃습니다.
 
미르:( ... 교과서 필기 하나도 안 했다는 말은 안해야겠다. )
 
사실 더운 건 당연한 소리고 미르를 보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일텐데 말이에요.
 
자기가 더운건 신경쓰지 않고 미르를 챙기기 위해 한걸음에 오고는 미르의 부탁에 흔쾌히 가주는 마루.
 
열 여덟 마루는 그랬습니다. 스물 여덟의 마루도 그랬나요?
 
미르:( 지금보다는 덜 했지만 그래도, 챙겨주기 위해 오는 건 매한가지죠. ... 언제나... )
 
그런 마루의 눈을 피해 쓸쓸히 종말의 세상에서 홀로 죽을려고 했었군요? 미르는.
 
미르:( ... 마루가 슬퍼하는 모습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마루가 우는 모습..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
 
훌쩍...
 
미르의 반과 마루의 반까지 거리는 짧아서 금방 마루의 반에 도착합니다.
 
미르:( 유인물이 어디에 있으려나. 두리번두리번. )
 
칠판 옆, 종이를 꽂아두는 보드에 있습니다. 살펴보나요?
 
미르:( 칠판 옆부터 살펴봅니다. )
 
미르의 반과 똑같이 일사병 예비 방법에 대해 적혀있습니다.
 
그리고 미르의 반과 똑같이 멸망까지 앞으로 10년이라고 적혀있습니다.
 
미르:멸망까지 앞으로 10년.... ( 중얼 )
 
마루:응? 뭐가? (미르를 바라봅니다.)
 
미르:여기에. ( 일사병 예비방법 적힌 곳에서 멸망까지 앞으로 10년 가리키기 )
 
마루:...? 응. 거기에?
 
미르:안 보여?
 
마루:...열사병 예비 방법이...?
...미르야 괜찮아? (손을 뻗어 미르의 앞머리를 쓸어넘길려다가 그만둡니다.)
 
운동장 옆에 마련되어있는 수돗물에서 세수를 하고 온 참인지 마루의 손과 얼굴과 머리카락은 물로 젖어있습니다.
 
미르:( 뭐지....? 잠시 빠안 보 다가 마루 보더니 제 이마에 먼저 손을 올려봅니다. ) 나 열 없어. 오늘 괜찮아.
 
마루:(안도하며 미소지어요.)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고. 무슨 낙서나 얼룩이 있다고 해도 지금 미르 네가 신경쓸 필요는 없을거같아.
 
평소와 다름없는 안정적인 마루. 역시, 마루는 10년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미르:( .... 차라리 모르는 게 났지... )
 
마루:그래서, 수업은 뭐했어? 아까 내가 손 흔든건 봤어? (시시덕거리며 잡담을 합니다.)
 
미르:수업? 작문 수업이였어. 손 흔드는 것도 봤고. 갑자기 선생님이 멸망에 대한 질문으로 넘어간 거 있지. 그러면서 나보고 멸망 직전에 뭘 할거냐고 물어보시길래 그거 대답했어. 눈이 마주칠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말이야.
 
마루:그 선생님은 워낙 엉뚱하시니까 갑자기 이야기 새기도 하고 기습 질문도 하시잖아. 멸망이라... 넌 그래서 뭐라고 말했는데?
 
미르:그런가. ( 흠. ) 그 질문에 내가 보기 좋게 당해버렸지. ( 하하. ) .. 난... 가족들이랑 시간 보내고 싶다고 말했어. 평범한 일상 보내는 거.
 
마루:음~ 미르답네. (간단 명료.)
 
미르:그치? ( 흠... ) 마루면, 마루라면... 뭐라고 답할거야, 그 질문에?
 
마루:우와? 이렇게 복수하기야? 글쎄... 나라면... (잠시 생각해봅니다. 이윽고...)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랑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
 
미르:마루 같네. ( 피식. ) 둘 다 생각이 비슷하네.
 
마루:그야 너랑 나랑 생긴 것도 같으니까! (푸핫 웃어요.)
 
미르:( 피식 웃고. ) ... 아무튼 궁금증은 다 해결했어. 마루는 다음시간 뭐야?
 
마루:나? (보드에 같이 붙어있는 시간표를 봐요.) 수학이네... (좀. 굳은. 표정.)
 
마루:(수학인걸 보고 약간 찡그려요.)
 
미르:( 메엥. )
 
마루:미르, 너는 다음 수업 뭔데?
 
미르:나....... ( 뭐였지 )
 
그러게요? 무엇일까요? 무슨 수업이면 좋겠나요?
 
미르:체육... 은 아니겠지. ( 흠... )
 
마루:(이 날씨에 체육이라. 미르는 힘들지도.)(같이 흠.해요.)
 
한참을 마루의 교실에서 잡담하면, 마루네 반 학생들이 하나 둘 들어옵니다.
 
마루의 반에서 마루와 대화를 나누는 미르의 귀에 아이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립니다.
 
듣기 판정 해볼까요?
 
미르: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51
판정결과: 보통 성공
( 귀가 밝아용 )
 
미르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립니다.
 
잘했어용 복복
 
학생A: 이틀 뒤면 여름 방학이네. 계획이라도 있어? 독서실에서 공부만 하기엔 좀 아쉬운데.
 
아이들은 벌써부터 방학 때 할 일을 정하나 봅니다.
 
미르:( 저런 거 생각하고 부럽다.... )
 
저기요 인생 2회차씨.
 
하긴. 이번 여름이 유독 덥기도 하고 여름이 끝나면 이제 2학년도 금방이고, 곧 3학년이 되고 졸업을 앞두게 될테니까요.
 
미르는 한 번 생각해볼까요? 10년 전 미르와 마루는 여름날 무엇을 하며 보냈는지.
 
미르:( ... 그때도 난 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마루는... ... 독서실에 자주 있지 않았었나.... )
 
그래도 여름 방학, 미르와 마루와 함께 무언가를 했던 추억은 있지 않을까요?
 
미르:( 마루가 와줘서 같이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복숭아 먹던 거...? 병원 뒷쪽에 작은 공원에서 이야기하던 거.... )
 
소소한 일상 속에서 함께 지냈던 나날이네요. 두 사람답고 좋아요.
 
마루:(아이들 대화를 미르와 함께 듣고있나봅니다.)
 
미르:( ... 씁쓸한 표정으로 있다가 마루보고 방긋 웃더니.) 그만 반에 돌아가볼게. 시간표도 확인해야하니까.
 
미르가 미르의 반으로 돌어가려고 할 때, 조금 머뭇거리던 마루가 미르를 불러세웁니다.
 
마루:미르야. 학교 끝나면 병원 갈 때 데려갈게. 아직 병원에 지내야되지?
 
미르:응? 으응. 슬슬 여름방학이잖아. 그러니까 가 있어야지. 혼자 갈 수 있어. 혼자 가도 돼.
 
마루:...아, 그거 때문이야? (뭔가 미안한 표정입니다.)
 
미르:응, 뭐가? ( 미안한 표정 보더니 )
 
마루:아니, 방학 때 일이 있어서 너 보러 못 오니까. 그거 때문에 혼자서 가보려는거야?
 
이상하네요. 열여덟 마루가... 방학 때, 미르를 못 볼 정도로의 일이 있었던가요?
 
미르:( 있었나....? 기억이 안 나는데.... )
 
분명 과거 미르와 마루는 함께 열여덟의 여름방학을 보낸 기억이 있는데. 마루가 악의를 가지고 미르의 말을 거절한 것은 아닌 듯 합니다.
 
미르:( 흠.... 일단은 고개를 끄덕여봅니다. ) 으응, 그거 때문에.
 
마루는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있으니까요. 미르가 기억하던 과거와 조금 달라졌습니다.
 
마루:(미르를 봅니다. 걱정하는 모습은 평소와 다름이 없습니다.) 엄마 아빠가 너 걱정할텐데... 알겠어. 걸어갈 상태 아니면 운동장 옆에 자전거 보관소에 와. 자전거 타고 왔어.
 
미르:괜찮아. 내가 나이가 몇인데 혼자 병원도 못 가겠어? ( 당당한 자세로 베시시 웃어보입니다. ) 못 걸어가겠으면 갈게. ( 끄덕 )
 
마루:병원 가기싫다고 도망치던게 엊그제 같았는데~ (키득키득 웃습니다.)
 
미르:아무튼 가볼게. 체육이면 나 큰일나? ( 그러면서 손 흔들어보이고 제 반으로 향해봅니다. )
 
마루:응. 알겠어.
 
미르의 말을 들은 마루는 작게 웃곤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자리로 갑니다.
 
매 순간이 성장 일기인 우리에게 여름은 중요한 계절인데. 마루는 그렇게 느끼지 않는 듯 하네요.
 
아까 마루의 말도 그렇고, 과거에 무슨 문제가 생긴걸까요?
 
세상이 멸망하기까지 10년밖에 남지 않았는데 함께 있을 시간은 턱 없이 부족합니다.
 
뎅- 뎅- 뎅-
 
예비 종이 칩니다. 미르는 교실로 가나요?
 
미르:( 일단 교실로 향합니다. )
 
미르는 무엇을 하나요?
 
미르:( 다음 시간 수업 확인하고 준비해야겠지요. )
 
다음 수업은 무엇일까요? (빤히 봄)
 
미르:( .... 그러... 게요? )
 
날조 얼른
 
미르:( 체육이라고 합시다 )
 
아.
 
미르의 예감이 맞았네요. 체육입니다.
 
예비 종이 치자 미르네 반 학생들은 옷을 갈아입고 운동장으로 나갑니다.
 
미르는 무엇을 하나요?
 
미르:( ... 일단 체육복은 갈아입고 따라나가봅니다. 체육은 못 할테지만. )
 
운동장에 가면 체육 선생님이 서있습니다. 다행히 늦지는 않았네요.
 
선생님: 수업 시작할거니까. 다들 몸 풀고 있어.
 
미르:( ... 조용히 앉을만한 곳에 가서 앉아있기. )
 
체육 선생님은 미르의 상태를 아는지 앉아있는걸 보고도 무어라 하지 않습니다.
 
아니, 한 마디는 하네요.
 
선생님: 준비 운동이라도 못하겠어?
 
미르:( 어...잠시 보다가 우물쭈물) 체육은... 가능하면 다 삼가하라고 병원에서 그래서어....
 
선생님: 흠. (끄덕이고 그대로 있으라고 합니다.) 앉아서 스트레칭이라도 할 수 있으면 해. 너무 움직이지 않으면 그것도 안좋으니까.
 
미르:( 끄덕... ) 알겠어요...
 
체육 선생님은 학생들을 인솔하고 수업을 시작합니다.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운동장에 울려 퍼지고 공을 차는 소리. 여럿이 뛰어다니는 소음. 호루라기를 부는 소리들의 연속입니다.
 
미르:( ... 그저 멍하게 바라보면서 부럽다라고 생각하고.... )
 
매미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웁니다. 그늘 밖으로 보이는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 수식처럼 떠다니는 구름들.
 
미르를 두고 저마다 열여덟의 여름 수업을 즐깁니다.
 
미르는 어떤가요?
 
미르:( 그저 그늘에 앉아서 체육을 하고 있는 아이들을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봅니다.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이렇게 바라볼 수밖에 없고, 뛸 수 있다고 한들 마루에게 1차로 부모님에게 2차로 병원에서 3차로 혼날 거 때문에 차마 무엇도 못 하고 있는 자신 때문에 살짝 기운이 죽어있습니다. 여름의 수업을 더욱 못 즐기니 앞에 친구들과는 대비되어 보이는군요 )
 
개성 없는 책상 위, 수북히 쌓인 받지 못한 안내장, 참여할 수 없는 수업, 모두와 다른 혼자만 가지고 있는 기억...
 
여름은 이렇게 미르만 놔두고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
 
마지막 수업이 끝났습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요.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고 청소 당번인 아이들은 교실에 남아 책상 아래와 교실을 쓸기 시작합니다.
 
집에 가기 위해 복도를 달리는 모습들. 한껏 시끌벅적한 소란이 지나면 교실문을 나서봅니다.
 
미르:( 터덜터덜 걸어가보고 )
 
미르는 무엇을 하나요?
 
미르:( 병원으로 향해야지요. 터덜터덜 0-
 
걸어가나요?
 
미르:( 걸어가야지요...? 몸도 그리 아프지 않고 마루에게 부탁하기에도 미안하니까... )
 
마루:oO(무리하면 안될텐데!)
 
미르:( 다이죠부)
 
시간이 좀 늦었습니다. 푸르렀던 하늘은 점차 색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교문을 나서려는 미르의 눈에는 자전거 보관소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마루가 보입니다.
 
혼자 가기로 했고 마루는 알겠다고 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가는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겠네요.
 
미르:( 마루 다시 봄... )
 
마루의 등 뒤로 낮아진 태양이 보입니다. 가방끈을 손에 쥐고 있던 마루가 미르를 발견하자 미소 짓습니다.
 
미르:( 터덜터덜 가다가 마루 보더니 싱긋 웃어보이고 ) 아직 안 갔어?
 
마루:그 사이 몸이 아프면 하는 혹시 모르는 일 때문에 너가 교문 밖 나서면 나도 갈려고 했어.
 
또 속이 뻔히 보이는 말을 합니다.
 
미르:내가 그렇게 약하지 않다니까아. ( 장난스래 툴툴거리는 말 하더니. ) 마루 바쁘지 않아?
 
마루:응? 아니. 지금은 안 바빠. 바쁜건 방학 때라고 했잖아. 미르 너야말로... (표정이 조금 어둡습니다.)
 
미르:독서실가려면 병원이랑 반대방향이잖아... 나? 난 많이 안 바빠, 괜찮아. ... ( 어두운 표정 바라봅니다. 무슨 일 있나. )
 
마루:너랑 다르게 꼭 가야되는건 아니지. 아까 수업하면서 창 밖 봤는데, 너 혼자 체육 시간 때 앉아있더라고. 그래서...
미르야. 내가 너무 걱정하는 것처럼 보이지? (자조적인 미소를 짓습니다.)
 
미르:익숙해, 나 체육 못하잖아. ( 한다고 하면 크게 난리날테니까. ) ...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 몸이 약하잖아. 어쩔 수 없는 거지. ( 애써 웃어보입니다. )
 
마루:(빤.) 그러면서 병원까지 걸어갈거고? (퉁명스러운 표정.)
 
미르:... 이 정도 운동은 해줘야해. 나 너무 안 걸어다녔어...
 
마루:(저 미르에게 심리학 쓰고 싶어요 나를 피하는거 같애...)
 
미르:( 그런 게 아닌ㄷ... ) (잠시 생각해보다가 졌다는 듯 양손 들더니. ) 가자, 방학 때 일도 많을텐데, 이때 아니면 언제 같이 가겠어. 내가 졌어.
 
마루:왠지 엎드려 절 받는 기분인데... (못말려~하는 표정으로.)
 
마루는 방학이 얼마 남지 않았고 날이 무더우니 하교 후 데려가는게 좋겠다고 합니다.
 
보통은 부모님이 병원에 데려가긴 했어도 마루는 가끔씩 이렇게 함께 병원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이건 바뀌지 않았군요.
 
미르:( 끄덕끄덕 )
 
마루는 세워둔 자전거를 가져옵니다.
 
어릴적에 본, 집 창고에 굴러다니던 옛날 자전거. 누가 봐도 마루의 것입니다.
 
미르:아빠한테 자전거 하나 사달라고 해.... ( 옛날 자전거 안쓰럽게 바라봄 )
 
마루:고쳐쓰면 새 것 같아. 잘만 가는데 새 자전거는 필요없지 않아?
(자전거가 은퇴하고 싶다고 해도 어떻게든 살려서 타겠다는 의지.)
 
미르:한 번 넘어가면 이제 더 이상 이세상 자전거가 아니게 될거야... 방학 기념으로다가 하나 사달라고 해. 아니면 내가 말해줄까?
 
마루:어... ... ...
아니.
 
마루가 앞에 올라탑니다. 미르에게 탈건지 눈빛으로 말합니다. 어떻게 할 건가요? 뒷자리에 타나요?
 
미르:( 뒷자리에 끙차 하고 앉습니다. )
 
마루가 자전거 손잡이에 걸어둔 자전거 헬멧을 미르의 머리 위에 씌워줍니다.
 
미르:( 헬멧 씀. )
 
안전운행. 안전장비.
 
자전거는 곧 경쾌하게 출발합니다. 교문에서 멀어집니다. 학교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이 이제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자전거는 한산한 거리를 달립니다. 자전거를 탄 미르와 마루의 그림자는 끊기지도 않고 탁. 탁. 바퀴 굴러가는 소리만 들리는 이 조용함.
 
미르:( 마루 허리춤만 끌어안고 등에 머리 기대기. )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 노을이 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붉고, 노랗습니다. 우리의 여름은 푸르러야 할 텐데.
 
마루:세상이 멸망하면 딱 이런 풍경 아닐까?...
 
자전거를 운전하던 마루가 말을 꺼냅니다.
 
미르:( ... 말 없이 다른 곳 바라보고 있다가 ) ... 세상이 멸망하면? 설마...
 
마루:아~ 큰일이네~ 빨리 오붓한 시간을 보내야겠는데~ (아까 멸망 전 무엇을 할까라는 말의 연장선인듯 가볍게 말합니다.)
 
미르:( 가볍게 말하는 말에 피식 웃어보이더니 ) 지금도 평범한 일상이야. 충분히 오붓하잖아.
 
마루:미르에게 엎드려 절 받은 오붓한 시간~... (놀리듯 말하며 자전거 운전에 집중합니다.)
 
미르:그런 말 하지마아~ ( 일부러 등 안 아프게 주먹으로 콩, 내려칩니다. )
 
마루:(HP-10. 자동 기절합니다.)
(농담ㅎ)
 
미르:( 어, 어라...? )
 
멸망… 그러고보니 미르가 멸망의 끝에서 죽음을 맞이 할 때의 풍경과 비슷합니다.
 
그때의 기억이 나나요? 오직 절망밖에 없었던. 지구에 끝은 이미 정해져있었고 살아있는 것이 죽어있는 것보다 가치가 없었던 때...
 
미르:( ...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나지... )
 
미르는 저물어가는 노을을 보면서 미세한 두통을 느낍니다.
 
세상이 불에 타고, 혹은 물에 젖어버리고. 폐허가 되고...
 
이건 뭘까요? 분명 마지막에는 마루가 함께 있었고, 세상은 매마를 뿐인데 여러 종말의 순간이 지나갑니다.
 
미르:( 눈썹 파르르 )
 
이건... 본 적도 없습니다.
 
기억에도 없는 다양한 종말들의 모습이 순식간에 눈 앞에서 휙휙 지나갑니다.
 
산치 체크. 1/1d3
 
미르:
SAN Roll
기준치: 29/14/5
굴림: 55
판정결과: 실패
rolling 1d3
 
(
1
 
)
 
 
=
1
 
굿.
 
정신을 차린것은 자전거가 멈췄기 때문입니다.
 
너무 빠르게 도착했다고 느낄만큼 미르는 벌써 병원 앞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마루:도착... ...? 미르 너 괜찮아?
 
미르:으, 으응? 괜찮아, 응. 괜찮아.
 
마루가 걱정하는 걸 보아 아무래도 얼굴빛이 별로인가봐요.
 
10년 후에 이 평화로운 지구의 끝을 마루는 모르는걸까요? 그 끝에서 미르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조차...
 
마루:내가 봤을 때, 미르 너 의사 선생님께 상태를 솔직하게 다 말해야될거 같아.
 
미르:( .... 또 걱정시켜버렸네. 애써 웃어보이는 표정 지어보이더니 ) ... 가서 말씀드릴게. 걱정 마.
 
마루:정말이지... (에효!)
 
미르:(웃으면서 자전거에서 내리더니 헬멧도 건네줍니다. ) 더 할 이야기 있어?
 
마루:이야기라면... 손 줘봐.
 
미르:( 손 내밀어보이고 )
 
마루가 미르의 손을 잡습니다. 그리곤 미르의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무언갈 씁니다.
 
글자가 보이지 않지만 감촉으로 읽어내리자면,
 
' 내일 만나자 ‘
 
웃으며 그렇게 쓰곤 바로 고개를 돌려 자전거를 타고 온 방향 반대편으로 사라지는 마루.
 
전깃줄이 만들어낸 엉킨 그림자가 유독 눈에 띕니다.
 
미르:( ... 문 앞에서 자전거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바라봅니다. )
 
내일은 우리들의 여름에 대해서 말해보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마루의 멀어져가는 모습을 보며 미르는 다시 두통을 느낍니다.
 
정신 판정해주세요.
 
미르:
정신
기준치: 30/15/6
굴림: 89
판정결과: 실패
( 세상에나 )
 
그러니까 30을 기도메타로 하려는 어쩌구
 
일사병이라도 걸린걸까요? 자꾸만 머리가 아파옵니다.
 
미르는 또 다시 멸망하는 지구의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이 멸망은 자신이 겪은것이 아닙니다.
 
온 세계가 바다에 잠겨버린 끝. 타들어가는 햇빛에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생소하기만 합니다.
 
...이건 대체 누구의 기억인가요? 어느 때의 순간인가요?
 
미르, 산치체크. 1/1d3
 
미르:
SAN Roll
기준치: 28/14/5
굴림: 52
판정결과: 실패
rolling 1d3
 
(
3
 
)
 
 
=
3
 
미르는 꿈의 이성 10점대를 만들 생각이구나 (주사위가 잘못함)
 
머리가 아파옵니다. 겪고싶지도 않고 떠올리지도 않는 세상의 끝이 다양한 형태로 미르를 괴롭힙니다.
 
미르:( 머리 꾸우우욱 누르기 )
 
복복복...
 
미르는 이제 무엇을 하나요?
 
미르:( ... 일단 병원으로 돌아갑니다. ... 오라고 했으니까... )
 
학교에는 다닐 수 있을 정도로 호전이 된 몸상태지만 아직 불안정한 건강 상태.
 
상태를 지켜보기 위해 한동안 병원에서 지냈었죠.
 
미르가 병원으로 들어가면 간호사가 미르를 반기고 곧 담당 의사 선생님을 부릅니다.
 
그리고 가벼운 검진과 함께, 오늘 상태에 대해 상담하는 시간도 가집니다.
 
누군가에게는 드문 일이겠지만 미르에게 있어서는 당연한, 일상이 된 일.
 
그 속에서 미르는 무엇을 하나요?
 
미르:( 평소랑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괜찮다 말하고 의사 선생님과 이야기가 끝나면 제 병실로 향해서 쉬러 가야겠지요. 그치만 오늘따라 씁쓸하네요. )
 
그것은 오래간만에 온 부자유스러운 병실 생활에서 온 걸까요?
 
아니면 학생들도 의사들도 모두 10년 뒤의 일을 모른채 충실하고 밝은 하루를 보내고 있어서 그런걸까요?
 
미르:( 후자가 좀 더 가깝겠지요. ... 아마도 )
 
모두 다 하루하루, 미래의 일을 모르며 지냈습니다.
 
10년 전의 미르 또한 그러지 않았을까요?
 
미르:( 그렇겠지... 그랬었겠지... )
 
몇 번의 여름을 지내고, 쌓여가는 추억이 많고, 후회도 생겼을 무렵.
 
모든 것은 돌연 사라지기 마련이니까요.
 
...
 
미르가 병실에 쉬면 해는 지고 이제 밤이 찾아옵니다.
 
미르는 이대로 자나요?
 
미르:( 잠들지 못하고 창밖만 바라봅니다. )
 
날이 더운 만큼, 하늘이 맑습니다. 별도 잘 보입니다.
 
무엇이 미르를 잠들지 못하게 하는걸까요?
 
미르:( 아무래도 계속 눈에 밟혀오던 그 멸망이라는 단어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 자신과 달라보이는 다른 아이들의 모습도 마찬가지고요. )
 
'미르. 너는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무엇을 할거니?'
 
'멸망이라... 넌 그래서 뭐라고 말했는데?'
 
'세상이 멸망하면 딱 이런 풍경 아닐까?...'
 
단지 자신은 10년 전으로 되돌아왔을 뿐인데,
 
푸른 하늘에 일직선으로 그은 비행기 구름처럼 미르에게 지울 수 없는 것을 남기고 가버립니다.
 
여름은 푸르러야하는데...
 
눈 앞은 새카만 밤하늘 뿐입니다.
 
미르:( ... 머엉... )
 
만약 세상에 멸망이 오지 않을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미르는 할 수 있을까요?
 
미르:... 최대한 막을 수 있는 만큼은 해야지.
... ( 또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되니까. )
 
지금은 여리고 몸이 약한 미르여도.
 
희망합니다. 다짐합니다.
 
잘 자요. 미르, 내일은 또 건강히 눈을 뜰 수 있도록.
 
다음 날.
 
좋은 아침을 맞이합니다. 멸망까지 10년, 적어도 그 시간 전까지는 편안하게 있을 수 있겠죠.
 
다시 학교입니다. 학교는 어제보다 더 소란합니다.
 
바로 내일이 여름 방학이니까요.
 
아이들은 방학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보입니다. 오늘은 방학식 바로 전 날이라 수업도 정상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선생님들은 자습을 주고는 교실 밖으로 나가셨고, 아이들은 주어진 자습에 서로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 바빴습니다.
 
미르의 주변에도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청춘의 한 가운데의 여름방학인데 병원에서만 지낼건지 걱정하는 모양이겠죠.
 
미르:( 이런 관심은 오랜만인데. ... 일단 웃으면서 말합니다. ) 몸이 아프니까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올해는 여행 갈 수 있을 거야, 응. ( ... 아마도 이긴 하겠지만. )
 
학생A: 미르는 방학 때 뭐할지 벌써 정했어? 여행 가?
 
미르:방학 때라... 병원에 앉아서 책읽거나 그림그리거나... 어르신들이랑 이야기 하거나... 괜찮다고 하면 여행 가보려고. 올해는 꼭 가고 싶어서 말이야. 이때 아니면 언제 가보겠어.
 
학생B: 꼭 어디든 가 봐. 듣기로는 열여덟 여름 방학이 제일 중요하대. 향후 10년을 결정한다나, 뭐라나. 10년 뒤에도 병실에 있으면 안되잖아.
 
학생A: 10년 뒤라~ 이야... 난 그 때 뭐하고 있을려나?
 
미르:10년 뒤라.... 그 때까지 설마 병원에 있겠어? 그 안에는 건강해지겠지.
 
학생B: 우와 퇴원하는 날에는 한 턱 쏘.
 
학생A: (학생 B의 입을 쳐요;)
 
미르:( 꺄르륵 ) 그래그래, 몸이 완전히 건강해진다면 맛있는 거라도 사줄게. 그대신 너희도 나랑 계속 연락해줘야해?
 
학생A: 당연하지!
 
아이들의 이야기는 미래로 향합니다.
 
3년 뒤. 5년 뒤. 10년 뒤 ...10년 뒤의 미래가 어떨지 알고 하는 소리는 아닐테죠.
 
하지만 우울한 미래를 알려줘서 굳이 좋은 분위기를 망칠 필요는 없을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미르?
 
미르:( 그래도 10년이라는 시간이 있는데. 우울한 것보단 희망 가득한 게 좋으니까. 당연하지요. )
 
그럼요. 10년 전의 미르 역시, 10년 후가 그렇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채 성실하게 현실을 살아가고 있었으니까요.
 
듣기 판정 해봅시다.
 
미르: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34
판정결과: 보통 성공
 
똑. 똑. 복도 쪽 창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미르:( 친구들 사이에서 고개 슬쩍 돌려서 창문 쪽 바라보기 )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보자, 그곳에는 어제와 같은 곳에 서서 미르를 향해 손을 흔드는 마루가 서 있습니다.
 
소란스러운 반을 밖에서 쭉 둘러보던 마루는 미르에게 복도로 나오라며 손짓합니다.
 
미르:( 주변 친구들에게 잠시만, 이라는 말을 하고서는 마루에게 가봅니다. )
 
학생A: 응? 그래~
 
마루를 보기 위해 교실 밖으로 나가기 전, 미르의 옆으로 게시판이 지나칩니다.
 
핀으로 꽂은 유인물이 미르의 몸짓으로 생긴 바람에 맞춰 살랑 살랑 움직입니다.
 
<유인물>을 한 번 더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미르:( ... 가다가 유인물을 힐끔 봅니다. )
 
<유인물>에 적힌 안내글은 어제와 조금 달라져 있습니다.
 
미르:( .... 2년이 줄었어.... )
 
10년 후의 미래가 8년으로 바뀌었습니다.
 
산치체크, 0/1.
 
미르:
SAN Roll
기준치: 25/12/5
굴림: 3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 세에상에나 )
 
? 기도메타 성공함
 
8년이라니. 대체 이유가 뭘까요? 분명 10년 후여야 하는데...
 
이유를 알 수 없던 지구의 마지막이 2년이나 앞으로 당겨졌습니다.
 
미르:( ... 눈 비비고 다시 보기 )
 
미르가 유인물 앞에 서서 밖으로 나오지 않는 걸 본 마루가 한번 더 창문을 두드립니다. 똑똑, 똑-
 
미르:( 잠시 멍하게 바라보다가 창문 두드리는 소리에 다시 후다닥 )
 
밖으로 나가자 더운 바람이 훅 끼쳐옵니다.
 
미르:( 여름이구나... )
 
교실 안에만 있어서 잘 몰랐는데, 여름의 더위가 한층 더 가까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얼음이 들어있는 물병을 마루가 미르에게 건네면서 "덥지?" 하곤 묻습니다. 사실 이 더위의 근원지는 가까운 둘의 체온, 바로 앞에 있는 마루인데 말이죠.
 
미르:( 설마. 얼음이 든 물병을 받더니 방긋 웃습니다. ) 괜찮아. 어쩔 수 없지, 여름인데.
 
마루:수분은 잘 챙기고 있어? 얼음 들어있으니까 마실거면 천천히 마셔.
 
미르:그럼. 매일 물병 챙기고 다니는 걸. 엄마가 아침에 가방에 넣어줬어.
 
마루:잘했어 잘했어 (뽀다담)
 
미르:마루는 반에 안 있고 왜 여기왔어? 와도 돼?
 
마루:나? 우리 반 오늘 수업 없어. 고3이면 몰라도 방학 직전이니까 수업 안할려나봐. 너네도 수업 안하는거 같던데?
 
미르:수업 안 하긴 하지만... 수업시간이니까. 그래서 물어본거야. 자습 안 해도 돼? 공부할 거 많지 않아?
 
마루:딱히? 방학 전이니까 공부는 방학 때 하면 돼. 그리고 애들 너무 시끄러워~ (가볍게 불만을 말해요.)
 
미르:어쩔 수 없지, 방학 전이니까 다들 들떠서 그런 걸거야. 이번 방학 지나면 다들 조용해질걸?
 
마루:(잠시 생각을 하고는 조용한 미소를 짓습니다.) 그렇겠네. 개학하면 또 시험이겠고...
 
미르:선생님들이 분명히 '이제 너희가 고삼인거 알지? ' 이러면서 시작할 게 뻔한걸.
 
마루:아~... 와... 벌써 담임 선생님이 그런 말 하는거 들리는거 같다야...
맞다. 수업 안한다고 했지? 사실 시끄러운 것도 있지만 교무실 심부름 있어서 가는 길에 생각나서 들렀어. 강당에 의자를 놓아두러 갈건데. 같이 가자.
 
미르:( 키득거리다가. ) 응? 강당에? 나 같이가도 괜찮아? 도움은 안 될텐데...
 
마루:당연히 도와달라고 말은 못하지. 그래도 나보다 꼼꼼할거니까 의자 열 맞추는거 보고 알려줄 수 있어?
 
미르:그럼, 그정도는 할 수 있지. ( 끄덕끄덕! )
 
방학식은 뜨거운 햇빛을 피해 강당에서 하기로 했습니다. 내일을 위해 의자를 놓아두는 것 같습니다.
 
몸상태도 어제보다 나아서 도와주지 못할 이유도 없습니다.
 
수업은 없고. 반은 소란스럽고. 눈 앞에는 마루가 있으니까요.
 
미르:( 오히려 좋지. )
 
마루:아. 친구들이랑 얘기하고 있던거 아니었어? 내가 또 눈치가 없었나? (머뭇...)
 
미르:아니야, 괜찮아. 잠시 다녀온다고 말 하고 올테니까 걱정마.
 
말하고 오나요?
 
미르:( 친구들에게 일손 필요해서 잠시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알겠다고 하는 것까지 다 듣고나서 옵니다. )
 
학생A: 응? 다녀와 다녀와. 선생님도 안계시는데~
 
학생B: 그러면서 몰래 학교 밖.
 
학생A: (학생 B의 입을 칩니다.)
 
미르:( 꺄르륵. )
 
학생들은 다시 수다를 이어나갑니다.
 
마루:애들한테 얘기하고 왔어? 그럼 갈까?
 
미르:하고 왔어, 가자. ( 끄덕! )
 
둘은 강당으로 향합니다. 푸른색 복도를 넘고 계단을 내려갑니다.
 
본건물과 이어진 강당으로 가는 길은 멀지 않지만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끼이익-
 
열려있는 강당 문을 열고 들어가면 커다란 공간이 둘을 맞이합니다.
 
이미 몇 명이 앞줄과 뒷줄의 의자를 놓아두고 간 모양입니다. 강당 뒤에는 펼쳐 두어야 할 의자들이 접혀진 채 놓여져 있습니다.
 
미르:( 오... )
 
마루가 의자들을 세우며 두 번째 줄로 향합니다. 남은 곳은 다섯 번째 줄. 여덟 번째 줄.
 
마루:방학 때 보고 싶을거야. 너무 걱정하지말고, 내가 뭐 가출하는 것도 아니고 바쁜거 뿐인데...
 
미르:( 방학 때 뭐 한다고 했었나....? 기억이 안 나는데. 생각하면서 고개 끄덕거리곤 ) 어쩔 수 없지. ... 나도 집에 오래 못 있을텐데, 뭐.
 
마루:네가 병원에 있는건 늘 있는 일인데 뭐~
 
마루의 장난스러운 웃음소리와 가벼운 발소리가 빈 강당 안에서 울려 퍼집니다.
 
음, 맞아요. 조금 달라진 여름에 당황스러웠을 뿐, 여름만이 계절이 아닙니다.
 
마루와 미르가 함께하는 나날은 다른 계절에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 지금이 아닐 뿐이죠.
 
미르:( 지금 즐길 수 있음 좋았을텐데. )
 
마루:(몸은 괜찮고?)
 
미르:( ... 그럼...? )
 
마루:(...정말?)
 
미르:( 아마도...? )
 
마루:(째릿!)
 
미르:( ... 시선 피함 )
 
평화롭고도 장난스런 대화가 이어집니다.
 
강당에 놓인 의자들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는 바닥에 얽혀 거미줄같이 퍼져 있고 그 위로 둘의 모습이 방향을 달리한 채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두 번째 줄에서 첫 번째 줄로 가는 걸음. 다섯 번째 줄에서 세 번째 줄로 가는 걸음. 왼쪽으로, 혹은 오른쪽으로. 앞으로. 뒤로.
 
우리들이 밟았던 바닥을 표시할 수 있다면 분명 미르를 중심으로 꽤 아수라장이 되겠죠.
 
미르:( ... 멍하게 바라보고 )
 
두번째 줄 마지막 의자를 놓으면서 마루가 문득 말을 꺼냅니다.
 
마루:...
...그 때. 죽게해서 미안해.
 
미르:( ....) 응? 그 때라니...?
 
마루의 목소리는 이 넓은 강당을 울리기엔 너무나 작았지만 다섯 번째 줄에 서 있는 미르에게는 매우 또렷합니다.
 
그 때라니. 언제를 이야기하는거죠?
 
미르:무슨 이야기야, 마루야.
 
미르는 의문을 표하지만 이미 답을 알고 있습니다. 미르가 죽음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억은 한 번입니다.
 
10년 후의 미래.
 
철제 의자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납니다.
 
강당 창문을 가려 놓았던 얇은 커튼이 흔들릴 때마다 작은 입자 먼지들이 햇빛에 모습을 드러내다가 다시 사라지기를 반복합니다.
 
마루:무슨 이야기라니, 괜찮아. 그 때 나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혼자서 죽어가고 있었지? 지금은 이해해. (힘없이 웃어요.)
 
미르:( ... 마루에 말에 잠시 그대로 멈춰섭니다. ... 그걸 기억할 리가 없는데. ... 애써 숨기려는 듯 말합니다. ) 무슨 말이야, 그게. 내가 왜 혼자 죽어가, 응? 마루 걱정하게...
 
마루:미르야. (차분히 말합니다.) 기억하고 있겠지. 10년 후에 어떻게 될지를 말이야.
 
관찰력 판정.
 
미르:
관찰력
기준치: 85/42/17
굴림: 2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마루의 말 한마디에 강당 안에서 불어오던 바람의 방향이 바뀐 것만 같습니다.
 
어떻게 마루도 미래를 기억하고 있는걸까요? 강당 벽에 붙어있는 달력이 보입니다.
 
미르:( ... 흘끔 달력 보기 )
 
푸른 달력은 여름의 어느 날을 가리키고 있었고, 바람에 페이지가 넘어가면서 적힌 글자를 또렷하게 내보입니다.
 
적혀있는 글자는...
 
[멸망이 시작되기까지 앞으로 6년]
 
미르:( ... 멸망.... )
 
마루:나도 알아. 우리가 10년 후에서 왔다는 걸...
 
미르:.... ( 애써 무시하다가 웃으면서 ) 무슨 소리야, 그게, 응?
 
마루:있잖아. 미르야. (어떤 말을 해야될까, 차분한 표정입니다.)
내가 방학 때 무슨 일을 하는지 말한거 기억 나?
 
미르:방학 때...? .... 어어, 기억 나지...? ( 아마도 )
 
마루:나, 말 하나도 안 했어. 방학 때 일 있으니까 병문안 못 갈거라는 것도 어제 처음 말했어.
 
미르:... 어, 어....?
 
마루:(장난치는 미소지만 여전히 힘이 없습니다.)
 
마루도... 마루도 알고 있었습니다. 10년 후를.
 
10년 후에 겪게 될 미래를.
 
의자에 두 팔을 기댄 채 마루가 살며시 미소지으며 다시 말합니다.
 
마루:그럼 그것도 기억해? 우리가 …너무 많이 죽었다는 거.
 
미르:... 많이 죽었따고...?
 
너무 많이 죽었다니. 미르는 마루의 말을 도통 이해 할 수가 없을겁니다.
 
당연합니다. 미르의 기억에는 10년 후. 그러니까, 단 한 번의 죽음밖에 남아있지 않은걸요.
 
미르:( 그러니까..... )
 
다시 머리가 아파옵니다. 어제와 똑같은 증상입니다. 맥박이 빨라지고 심박수가 높아집니다.
 
어지럽고 흐릿한 시야.
 
미르:( ... 이마 꾸우욱 누르고 주저앉기 )
 
마루:(같이 쪼그리고 앉습니다.)
 
분명 몸이 약한 미르는 자주 느끼는 감각에 이 뒤에 어떻게 될지 쉽게 깨닫고 맙니다.
 
미르:( ... 쓰러지지. 응... )
 
마루가 미르 앞에 앉습니다. 높은 체온을 가진 미르의 피부 위로 마루의 차가운 손바닥이 닿았다가 떨어집니다.
 
걱정스럽게 미르의 앞머리를 넘겨주는 마루는 앉아있는 미르와 시선을 맞춥니다.
 
듣기 판정.
 
미르: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40
판정결과: 보통 성공
 
먹먹해지는 귓가 뒤로 마루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마루:난... 몇번이나 세상이 끝나고 다시 시작되었는지 모르겠어.
사람들은 무너지는 지구를, 일상을 다시 돌려놓기 위해 계속해서 과거로 시간을 돌렸지만 언제까지 우리가 과거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미르. 네가 미래를 기억한다는건, 10년 후 있을 멸망 땐 내가 아니라 이제 네가 선택해야 한다는 뜻이야.
 
마루의 목소리가 강당에 울립니다.
 
물어볼 것이 많습니다. 물어봐야 하는 것도요.
 
하지만 미르의 머리에는 기억되지 못했던 장면들이 끊임없이 상기되고 있습니다.
 
세 번째 멸망했던 지구. 네 번째. 일곱 번째. 열두 번째. 스물 한 번 째 …그리고 그때마다 봐왔던 마루와 자신의 '달라진' 모습들.
 
스물 초반의 모습. 스물 다섯 때의 모습. 갓 성인이 되었을 때의 모습.
 
그때마다 반드시 '지구는 멸망해서' 우리들은 계속해서 과거로 돌아왔습니다.
 
아마 지금의 모습도 그 '돌아온' 과거일테죠.
 
산치체크. 0/1 입니다.
 
미르:
SAN Roll
기준치: 25/12/5
굴림: 72
판정결과: 실패
 
쇼크였구나...
 
이성 -1해주세요.
 
미르:( 하... )
 
그때마다 마루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 마냥 미르의 손바닥에 인사말을 적곤 했습니다.
 
지금 이 지구가 무너져 내려도 우린 또 다른 과거에서 또 다시 볼테니까.
 
너무 많은 정보들로 시야가 어두워집니다. 열사병의 증세처럼.
 
스스로의 심장소리가 귓가에서 쿵. 쿵. 널뛰기를 하듯 들려오고 올라간 몸의 열 때문에 온 몸이 화끈거립니다.
 
마루:조금 자둬...
 
걱정하는 목소리가 아닌 다정한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미르는 그대로 정신을 잃습니다.
 
...
 
누군가가 미르의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얇은 글씨를 쓰고 있습니다.
 
눈을 떠서 보고 싶지만 쏟아지는 잠은 유혹적이고 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어디... 뭐라고 쓰고 있는거죠? 집중하여 손에 쓰고 있는 글자를 어림잡아보면 나타나는 글자는…
 
' 내일 만나자 '
 
미르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침대에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미르:( ...부스스. )
 
주위를 둘러보면 이곳은 학교 보건실입니다. 하얀 베개와 이불이 미르를 덮고 있습니다.
 
다섯 개의 보건용 침대가 놓여있지만 침대에 누워있는 사람은 미르 외에 아무도 없습니다.
 
미르가 누워있는 침대의 오른쪽에 커튼이 쳐져 있습니다. 몸은 좀 괜찮나요?
 
미르:( 머리가 어지럽긴 하지만 괜찮은 것 같은데... )
 
그렇다면 잠시 일어나서 걸어볼까요?
 
미르:( 침대 잡고 일어나보고... )
 
미르가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 밖으로 나가면 책상에 앉아 계시던 보건 선생님께서 미르를 맞이합니다.
 
보건 선생님: 몸은 어때? 상태가 안좋으면 구급차 불러줄까? (미르의 몸을 알고 계시니 보통 학생에게는 잘 안 말하는 말을 합니다.)
 
미르:... 괜찮아요, 응. 더워서 그랬나봐요. 구급차 안 불러주셔도 돼요. ... 부모님께도 말이죠. ( 다정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고개를 저어보입니다. )
 
보건 선생님: 더운게 너희같은 몸 약한 애들에게는 제일 치명적인거 알지? 부모님 걱정 끼친다 생각하지 말고. 아이는 원래 부모 속 썩이고 그러는거야.
 
미르:... 그럼요. 그러니까 병원에서 요양하라고 말하신 거겠죠. 여름에 무리하지 못하게. ( ... 올해도 여행은 글렀구나... ) ... 그래도 걱정 끼친다고 생각할 수밖에요. ... 너무 많이 속썩이게 해버린 것 같아서요...
 
보건 선생님: 어떡하겠어? 속 썩는게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는 증거야. 안 사랑하면 속이 어떻게 썩겠니? 지금은 그걸 누려. 나중에 효도하면 되지. (후후훗 웃어요.)
 
미르:나중에... 좀 더 몸 나아지면 해야죠. ( 싱긋 웃고서. ) 그만 돌아가볼게요. 마루가 걱정하겠어요.
 
보건 선생님: 네 쌍둥이 오빠. 마루 걔가 널 업고 여기까지 왔어. 방금 전까지 옆에 앉아있었는데 교무실에서 부르길래 잠시 자리를 비운 참이야.
 
미르:마루가요? ... 또 그랬네요. ... 그러면 그냥 여기서 기다려야할까요. ... 없어지면 크게 놀랄텐데. ( ... 어린 애도 아닌데 참 챙긴다니까... )
 
보건 선생님: 교무실에 가보는건 어떠니? 담임 선생님도 네가 말만 하면 네 상태 알테니까 알아서 조퇴 해주실거야. 마루만 만나고 오늘은 이만 집에 가서 쉬렴.
 
미르:... 알겠어요. ( 몸 숙여 꾸벅 인사드리고. ) 가볼게요. 감사합니다. ( 그러고 보건실을 조심히 나옵니다. )
 
보건 선생님은 "열사병. 주의하고, 알겠지?" 그 말을 끝으로 시원한 물과 약을 건네준 뒤 손을 가볍게 흔들어줍니다.
 
그렇다면 손바닥에 내일 보자고 쓴 사람은 마루군요. 또 그렇게…
 
복도로 나오자 또 다시 여름의 습도가 미르를 감싸 안습니다.
 
보건실 앞에 있는 투명한 유리창문 밖에선 운동장에서 뛰어 놀고 있는 아이들이 보입니다.
 
학교를 감싸고 있는 푸른 나뭇잎들. 위험한 직선과, 교차하는 선들을 가진채 존재하는 그림자들.
 
우리들의 10년 전 여름은 이렇게 푸른데 왜 10년 후의 여름까지 푸를 수는 없는걸까요?
 
미르:( 미래도 푸른 하늘이면 좋을텐데. )
 
멸망의 색은 푸름과 떨어져있을테니까요.
 
밖을 보고 있는 미르는 복도를 지나가는 학생 한 명을 마주칩니다.
 
그 학생은 미르와 마루를 알고있는지, 대뜸 미르에게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을 건넵니다.
 
학생: 미르, 너도 전학 가? 하필이면 여름 방학때 전학을 가게 되다니. 적어도 2학년은 다 마치고 가면 좋았을텐데.
 
미르:응...? 전학? ( ... 어라...? 무슨 말이지. )
 
미르의 말에 그 학생은 마루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번 여름 방학 때 마루가 다른 곳으로 완전히 전학을 가버린다는 사실을요.
 
학생: 우리도 방금 알았어. 미르 너도 몰라? 너희 가족이잖아?
 
미르:어.... 그렇긴 하지. 병원에 있어서 이야기가 잘 안 닿았나봐. 요새 부모님도 바쁘셔서 이야기 잘 못 했거든. 내가 정신도 없어서 말이야. ( 하하... )
 
학생: 정신도 없기는, 아니야. 네 부모님도 나중에 말씀해주시겠지.
 
지금 마루가 교무실에서 선생님과 이야기하고 있는 이유도 전학 때문이라고 합니다.
 
미르를 제외한 학교 아이들은 마루의 전학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미르:( ... 왜 이걸 말 안 해준거지... 오늘 집에 들렸다가 병원에 가야하나.... )
 
이건, 확실히 다릅니다. 미르가 기억하는 10년 전의 과거와는.
 
미르:( 끄덕. )
 
그렇다면 다시는 보지 못하는 걸까요? 다시는 만나지 않으려고 그러는 걸까요?
 
미르:( ... 왜 그러는 건지 물어봐야겠어... )
 
학생은 몰랐다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유인물을 건네줍니다.
 
선생님이 반 아이들에게 나눠주신 종이인데 미르가 반에 없어서 대신 전해주러 온 참이라는 말을 덧붙입니다.
 
미르는 학생이 나눠준 유인물을 건네받습니다.
 
글자가 눈에 들어옵니다. 산치체크 0/1.
 
미르:
SAN Roll
기준치: 24/12/4
굴림: 35
판정결과: 실패
 
아깝다()
 
4년.
 
세상은 빠르게 멸망을 향해 다가가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미르:( .... 분명히 10년 전일텐데...? )
 
분명 미르가 볼 때마다 10년에서 점차 수가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왜 멸망이 이렇게 가까워지는 걸까요? 과거는 확실히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에는 분명 미르 당신과, 마루가 있겠죠.
 
마루를 만나야겠습니다. 만나서, 무슨 이유든. 어떤 말이든 들어야되지 않겠어요?
 
멸망이 더 가까워지기 전에. 우리의 여름이 이대로 끝나기 전에.
 
미르:( 일단 가봐야지.... )
 
미르는 교무실 앞에 도착했습니다.
 
마루를 만나려고 교무실 안으로 들어가기 전, 미르는 교무실 안에서 들려오는 선생님과 마루의 대화를 듣습니다.
 
대화를 들어볼려면 듣기 판정.
 
미르: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80
판정결과: 실패
 
강행? 아니면 이대로 하실래요?
 
미르:( ... 강행. )
 
그렇다면 다시 롤!
 
미르: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1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굿.
 
마루와 선생님의 대화가 교무실 문 너머로 자세히 들립니다.
 
선생님: 너무 갑작스럽게 가게 된 거라 친구들한테 제대로 인사도 못하겠네. 아이들하고 인사는 다 했어?
 
마루:괜찮아요. 다 인사하고 왔어요.
 
선생님: 그래. 미르는 어떡하고?
 
마루:미르는 전학 안 갈거예요. 갑자기 환경이 바뀌면 몸이 안좋을테니까요. 아직 퇴원도 이르고요.
 
선생님: 그래. 미르는 잘 챙길게. 그래도 내일 방학식엔...
 
다 인사하고 왔어요, 미르는 전학 안 갈거예요... 다... 전부... 그렇게 말하는 마루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선생님: 가는 김에 이것 좀 미술실에 놓아두고 갈래? 내일 방학식에 사용할건데 교무실에는 자리가 없어.
 
선생님은 마루에게 심부름을 부탁하고 돌려보냅니다.
 
미르:( ... 일단 숨어야겠다. )
 
"가볼게요" 마루의 인사가 지나자 교무실 문이 열립니다.
 
미르:( 계단에 호다닥 숨음 )
 
미르, 은밀행동 판정.
 
미르:
은밀행동
기준치: 60/30/12
굴림: 83
판정결과: 실패
 
아.
 
미르:( 아. )
 
들키기 vs 강행하기
 
미르:( ... 한 번망 더... )
 
고.
 
미르:
은밀행동
기준치: 60/30/12
굴림: 95
판정결과: 실패
( 아. )
 
?
 
미르는 계단에 숨을려고 하지만 긴 머리카락이 모퉁이 너머로 휘날립니다.
 
미르:( 모르쇠 )
 
마루는 아무 말도 없이 미르를 바라보더니, 그림자의 방향이 달라질 때 "몸은 괜찮아?" 라고만 묻습니다.
 
미르:( 마루 목소리에 자연스럽게 뒤돌아서 마루 보더니 ) 응, 괜찮아졌어.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보건쌤이 병원 가서 쉬어래서 미리 짐 챙기러 가려고. 마루는 어디 가?
( 자연스러운 연기 )
 
이야기를 듣는 마루의 표정은 …담담해보입니다.
 
마루:(제가 KPC 시트를 넣고 싶었군요 심리학 하고싶다(PC를 상대로 최선을 다해 맞짱을 뜨는 GM))
 
미르:( 그냥 학교 내에서 어디 가냐고 물어본건데 담담한 표정에 땀 삐질 )
( 전학 X 조퇴 X 교실 이동 O )
 
마루:(미르가 어디가냐는 말에도, 땀을 흘려도 한동안 가만히 바라볼 뿐입니다.)
 
미르가 알던 10년 후의 마루는 이러지 않았는데. 10년 전, 여름에 서 있었던 마루의 모습은 분명 이렇지 않았습니다.
 
마루:(이내 입을 엽니다.) …미술실 갈건데. 같이 갈래?
 
미르:미술실? 그래, 같이 가자. 어차피 그 쪽으로 가야지 반이니까. ( 끄덕끄덕 )
 
마루는 또, 자꾸만 같이 가자고 말합니다. 병원으로. 강당으로. 미술실로. 학교 어디로든.
 
미르:( .... )
 
두 손에 박스를 들고 있는 마루는 먼저 걸음을 뗍니다. 미술실로 말이죠.
 
소란스러웠던 학교가 잠잠해진 것만 같습니다. 우리는 지금 아무도 없는 빈 학교 안을 걷고 있는 걸까요?
 
미르:( ... 일단 말없이 따라가고... )
 
창 밖을 바라보자 운동장을 가로질러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이 보입니다.
 
운동장에 서 있던 골대와 나무들이 길게 늘어집니다.
 
미르:( 얼마나 잠들어 있었던거지... 잠시 창밖 바라보고 . )
 
해는 다시 아래로, 아래로 ….파란색이었던 우리들의 모습은 다시 붉은색과 노란색으로 얼룩덜룩입니다.
 
실수로 누군가 섞어 놓은 것만 같은 붉은 물감을 묻힌 것만 같은 모습으로 미술실 문이 열립니다.
 
미술실에 들어온 마루는 선생님께서 건네 준 박스를 책상 위에 올리고 하나 둘 정리를 시작합니다.
 
물어야 할 게 많지 않나요? 미르가 들고 있는 유인물에 적혀있는 멸망의 시간이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정말 모든 게 변할지 몰라요. 변한 채로 아무 의미도 없는 지구의 끝을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미르:.... ( 말을 해야하는데.... )
 
마루:...몇 년 남았어? 세상이 다시 끝나기까지 말이야.
 
미르:.... 4년.
 
하지만 이번에도 미르 보다 마루가 빨랐습니다.
 
마루:...4년.
 
선생님이 건네준 박스에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흰 도화지에 크레파스나, 물감. 먹과 색종이 같은 것들로 꾸며놓은 다양한 그림들이 마루의 손에서 정리되었다가 사라졌다가, 펼쳐졌다가를 반복합니다.
 
마루는 다 알고 있으면서 모르는 척 묻는 것 같습니다.
 
미르:.... 마루야.
 
언제였을까요? 미르가 가리킨 유인물의 글자가 안보이는 것처럼 그런 표정으로 태연하게.
 
마루:응? 왜?
 
미르:... 왜 나한테 말 안 해줬어...?
 
마루:어떤거 말이야? 나도 10년 전으로 되돌아 왔다는거?
 
멸망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도. 과거가 달라졌다는 것도.
 
미르:.... 그것도 있고. 일이라는 거. ... 전학간다는 거. .... 혼자 간다는 거. ....
 
...그리고 우리들의 사이가 그때처럼, 되돌아 갈 수 없다는 것처럼.
 
마루:어떻게 알았어?
 
미르:... 지나가다가 반 친구가 알려줬어. ... 유인물 주러 오는 길에 마루가 전학가는 데 나도 가냐고. ... 처음 들었어, 그걸. 친구한테서. ... 그게 마루도, 엄마도, 아빠도 가족도 아닌 타인에게서.
 
마루:친구가 타인이라니 너무 섭한 말이잖아. 그 친구 울겠다. (애써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입니다.)
 
미르:.... 그냥 반 친구일 뿐이야. 가족이 아니잖아. 친하지도 않는데. ( ... 장난스러운 표정에 비해 진지한 표정입니다. ) .... 왜, 왜 말 안 해줬어? 왜 나한테 많은 걸 숨기는 거야, 응? ... 난 마루에게 다 알려주는데?
 
마루:...정말 다 알려줬어? 미르야. (조금 섭섭한 표정을 짓습니다.)
 
미르:.... 난 숨기는 거 없잖아. 다 알려주잖아. ... 아픈 것도, ...
 
마루:...네가 과거를 되돌아 왔다는거는? 10년 후에 지구가 멸망할거라는 건? 자전거 타고 갔을 때 상태가 안좋았던거는? 왜 내가 교무실에 나오자마자 보건실에 있을 미르가 계단쪽에 있었던거는?
(...미르 혹시 업보인가요?)
 
미르:.... 안 물어봤잖아. .... 하나도. 모든 것도. ....
( 아닌가 물어봤나. )
 
마루:안 물어봤지. 하지만 내가 어째서 방학 동안 못 만나는지 의문을 가져도 너 역시 안 물어봤잖아. ...우리 이 점에 대해서는 정말 쌍둥이다. 진짜 똑 닮았어.
 
미르:....
 
마루:화낼려는건 아니고, 나도 네가 숨기고 있었다는거 알고는 있으니까. 그런데 나만 뭐라고 하잖아.
 
미르:.... 전학간다는 건 왜 말 안 해줬어? .... 그리고 왜 갑자기 가는 거야?
 
마루:...(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합니다.) 우리 둘이 같이 있어서 그래.
 
미르:우리 둘이 같이 있어서.... 라니?
 
마루:10년 후의 미래를 알고 있는 사람이 이렇게 가깝게 붙어 있으니까. 괜찮아. 좀 위태롭긴하지만...
우리가 멀어지면 멸망이 다가 올 시간은 다시 정상적으로 되돌아갈거야.
 
미르:그럼, 우리가 붙어 있으면...?
 
마루:...4년 보다 더 빠르게 멸망이 오겠지. 그건 싫을거잖아.
믿기 어렵겠지만 우리를 멸망하게 만드는 존재는 다음 멸망을 위해 항상 다음 사람을 찾고 있어. 그리고 그 다음 사람이 바로 너야, 미르.
 
반복되는 지구의 멸망은 막을 도리는 아직 없는 모양입니다. 인간의 능력에서 한참 벗어난 일이니까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고 위협적인 존재들에게 지구의 시간은 너무나 짧습니다.
 
그 존재들은 지구가 산산 조각이 날 때까지.
 
어쩌면 사람들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할 때까지 계속해서 멸망을 반복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들은 그때마다 과거로 돌아오겠죠. 예정되어 있는 멸망을 다시 겪기 위해서.
 
이 반복에 무슨 의미가 있나요?
 
미르:( .... )
 
미르도 알다시피 마루는 많은 시간을 반복했습니다.
 
그때마다 세상은 또 다른 방법으로 무너졌고 마루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단지 주변이 행복했던 나날로 되돌아가는 선택을 할 뿐.
 
그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는 마루를 어떻게 다 이해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 다음 대상이 미르. 당신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마루가 그냥 넘길 수 있을까요?
 
마루:미르야. 너도 알고 있잖아... 너는 아직 퇴원도 일러. 그러니까 최대한, 몸 건강하게 하고 그리고 몇 년 동안 마음껏 지내.
 
미르:퇴원 안 일러. 그냥 병원에서 걱정하는 것 뿐이야. 괜찮아, 건강해.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알아. ... 몇 년 동안 마음껏 지내라니? ... 혼자서?
 
마루:미르라면 혼자서도 잘 지낼거야. 그리고 엄마 아빠도 계시잖아. 친구도 있고, 병원에서 만난 분들도 계시고.
 
미르:.... 근데 마루가 없잖아.
 
마루:없겠지. 그렇지만 없으면 네가, 세상 사람들이, 더 오래 살 수 있잖아.
 
미르:... 너는? 그러면 너는?
 
마루:나는... 그냥 충분해. 이제 됐어. 이제... 주변 사람들이 행복하게 몇 년 동안 일상을 보내는 걸 몇 번이고 봤으니까 괜찮아.
 
미르:.... 나는, 너 없으면 어떨 것 같아?
 
마루:...(말문이 막혀요.)
 
미르:.... 내 삶의 시작과 끝은 다 너가 있었는데, 그 사이에 너가 사라지면?
 
마루:그래도 잘 살겠지. 혼자서 병원에 갈려고도 했었고. 듬직한 미르로 살아가겠지.
 
미르:그래서... 혼자 병원에 갔어? 내가 혼자서... 있을 때 어땠는지 본 적 있어?
 
마루:(그야 모르지...)
너야말로 매번 귀찮게 굴고 잔소리하고 겨우 얼마 차이 안나는데 오빠 노릇이나 해댈려는 내가 짜증나진 않았고?
 
미르:.... 내가 한 번도 짜증낸 적 없잖아, 엄마나 아빠에겐 했어도 너에게 낸 적 없었어. ... 짜증나지도 않아. 이해할 뿐이지.
 
마루:그렇다면... 지금도 이해해주면 안 돼?
 
미르:... 지금은 이해 못 해. 갑작스럽게 다가온 거잖아.
익숙하게 매일 온 것도 아니고, 매일 만나는 것도 아니고. 당장 갑작스럽게 운석 떨어져서 지구가 멸망해버린 것처럼. ... 지금당장 내가 없어진다고 해도, 너가 이해 할 거야, 응...?
 
마루:... 그건... 그건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라면... ...이해 할거야. 그게 미르가 행복하다면.
 
미르:... 내가 너한테 말 없이 병원에 장기입원하고 면회도 다 끊어서 완전 못보게 한다고 해도?
 
마루:...어쩔 수 없잖아. 세상이 다 그렇잖아. (분한 표정입니다.)
있지. 나 너한테 투정 부려도 돼? 오빠 노릇 실격하는데도 딱 한 번만 해도 돼?
 
미르:.... 오빠노릇 안 해도 돼. 난 그런 거 바란 적 없었으니까. ... 마루가 원하는 듯 해서 그저 있었을 뿐이지.
 
마루:너도 참. 그렇게 말하면 나 서운해서 울지도. (그리고 미르에게 가만히 몸을 기웁니다.)
...나. 이제 그만하고 싶어.
되돌아가고 싶지 않아. 그런데... 되돌아가고 싶어.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데 안하면... 모두의 목숨을 져버리는거 같았단 말이야. ...이제야, 그냥... 나에게 아무 책임 없어질 줄 알았는데 왜... 미르 네가 다음이냐고...
너도 그렇잖아. 사람들을 보면 이제 10년 후 저 사람은 저렇게 죽었지하는... 그렇겠지! 이제 됐어! 그리고 그럴 바에야 조금이라도 더 긴 삶을 사는게 뭐가 나쁜데!
정해진 멸망을 바꿀 수는 없겠지! 하지만 조금 덜 슬퍼질 수는 있는거잖아!
 
적어도 지금이 아닌, 우리의 다음 과거를 위해서. 과거는 반복될 겁니다.
 
사람들은 '멸망'에서 멀어지기 위해 더 오래된 과거로 가고 싶어했고 마루 역시 '멸망'에서 10년 전의 과거를 선택했습니다.
 
알아요. 여기서 우리가 영영 이별한다면, 다음 과거에서도 이별이겠죠.
 
그 과거에서도 안녕이라면 그 다음 과거에서도 만나지 않을 겁니다.
 
마루의 목소리가 흔들리고, 떨리는가 싶더니 후두둑. 눈물을 떨굽니다.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면서 우는 마루의 모습 뒤엔, 어제와 같이 선명한 노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번 생의 마지막에서 분명 당신이 생각나겠지만 다음 생에는 당신과 내가 누구도 기억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서로를 생각하며 끝을 맞이하는 건 전혀 낭만적이지 않으니까요. 그게 끊임없이 반복된다면 더더욱.
 
새삼스럽지만 그 모습을 보면, 마루는 이제 희망이 아닌 두려움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흘러가는 우리의 여름이 너무나도,
 
뜨겁습니다.
 
마루:...그래서 마음을 두고 멀리 떠날거야. 가까이 있을 수 없다면 차라리 모두 놓아둘거야. 생에 처음부터 있어도 죽음의 마지막까지 있을... 필요는 없잖아. ...
 
미르:.....
( 아무 말 못하고 그저 마루만 바라봅니다. 무어라 말 할 수 없고 행동할 수도 없어서. 그저 정적만을 이룹니다. 노을이 지고 두사람을 주황빛으로 물들어가는 마당에도. ... 그래도 할 말은 해야하는데, 차마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아 입술만 우물거리다가 결국 내뱉습니다. ) . .... 난 필요해. ... 난 그러고 싶어. 마루는, 마루는 오빠잖아. 미르 곁에 꼭 있어주기로 약속했잖아.
 
마루:꼭 있어주기로... ... ...상황이 달라졌잖아. 나는 그냥... 네가 또 평온한 10년을 보냈으면 좋겠어. ...가족이랑 여행가고, 친구들이랑 쇼핑하고, 마음껏 다니면서, 그 짧은... 시간이라도 못 누렸던 자유도 누리고... 그런데 미르 넌 왜 계속 나랑 계속...
(눈물 쓱 닦아요) …미안해. 내 할 말만 하고... 내일 보자... 너한테는 힘들어도 우는 소리 하나도 안냈던거 같은데 자존심 상하게...
 
멈추지 않은 눈물에 애써 말합니다. 마루는 정리하던 물건들을 내버려둔 채 미르를 지나쳐 미술실 밖으로 나갑니다.
 
오늘은 병원에 데려다 주겠다는 말이 없습니다.
 
내일 또 보자는 말을 우리들만 알아 볼 수 있는 말로 손바닥에 적는 행동도.
 
노을에 길어지던 우리들의 그림자도.
 
달아오른 온도와 자전거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도…-
 
노을이 지는 창 밖의 풍경을 사진처럼 담은 미술실 안에 홀로 남은 미르는 정말 내일, 마루를 볼 수 있는걸까요?
 
우리들의 여름이 이렇게 끝나도 괜찮은걸까요? 다시 마주할 과거를 위해서?
 
미르:....
 
미르는 깨닫습니다.
 
미르가 들고 있는 '유인물'이 가리키고 있는 멸망의 시간이 이제 고작, 2년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요.
 
산치체크. 0/1
 
미르:
SAN Roll
기준치: 23/11/4
굴림: 17
판정결과: 보통 성공
 
23의 기적을 보여주마.
 
혼자 남은 미르는 무엇을 하나요?
 
미르:( ... 멍하게 보다가 혼자서라도 돌아갑니다. ... 병원에 안가면 난리가 나니까... )
 
-
 
방과후에 병원으로 가기 위해서 교문을 보면 이제 아무도 없습니다.
 
미르:(자전거 주차장 바라보고... )
 
마루는 언제 집으로 간걸까요. 적막한 학교. 비어있는 자전거 주차장. 변함없이 더운 하늘. 저물어가는 노을.
 
미르는 병원으로 가겠죠? 어제는 자전거 굴러가는 소리와 함께 마루와 실없는 대화를 주고 받으며 갔는데,
 
세상이 너무 이질적이고 미르를 혼자 놔두고 가버린 생각이 듭니다.
 
미르:( ... 전화할 이도 이야기할 이도 없이 무거운 발걸음만 터벅터벅 )
 
병원으로 향하나요?
 
미르:( .... 일단 집부터 향해봅니다. 부모님께 정확한 상황과 상태는 말해야하니까. )
 
미르가 집으로 향하면...
 
마루의 방 창문은 불이 꺼져있고 자전거도 없습니다.
 
미르:( 독서실 갔나보네. ... 말 없이 그냥 조용히 집으로 들어갑니다. )
 
집으로 들어가면 엄마가 미르를 맞이해줍니다. 놀란 눈입니다.
 
엄마: 병원은 어떡하고? 집에서 들고 갈게 있어? 엄마한테 전화하지...
 
미르:잠시 왔어요. ... 학교에서 쓰러졌었어서. 금방 다시 갈 거예요. ( 애써 웃어보이고선 방으로 향합니다. )
 
엄마: 쓰러졌다니, 무슨 소리야? 몸은 괜찮고? 의사 선생님께 말씀 드려볼까? 응? (방으로 향하는 뒷모습에 꾸준히 말을 합니다.)
 
미르는 방으로 향합니다. 누구의 방으로 가나요?
 
미르:괜찮아요, 응. ... 제가 말씀드릴게요. ( ... 제 방으로 향합니다. )
 
미르의 엄마는 걱정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지만 더이상 말을 하지 않습니다.
 
10년 전 엄마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미르:( 찌잉 하면서 울 것 같지만 일단 꾹 참고 제 방에 들어갑니다. )
 
미르의 방은 불이 꺼져있고 미세한 먼지 냄새가 나지만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습니다.
 
미르:( ... 가방만 바닥에 툭, 던지고 침대에 엎드립니다. 인형이 가득한 침대 위로 툭. 하고 힘없이 넘어집니다. )
 
언제라도 딸이 퇴원하면 지낼 수 있도록 반듯하게 새어진 이불에 작은 주름이 생깁니다.
 
미르를 대신해 침대를 차지하던 인형들이 침대가 눌린 방향에 따라 기울어집니다.
 
세탁한 냄새, 오랜만에 맡는, 집에서 자주 쓰던 익숙한 섬유 유연제의 향기.
 
이토록 언제 와도 익숙하고 10년 전 그대로인데도, 미르의 마음은 아닌가 봐요.
 
미르:( ... 그저 아무 말 없이 울음만 터트린 채 숨죽여 웁니다. 마루가 신경쓰이니까... )
 
저 울거 같아요
 
있어야 할 것. 따뜻한 집, 반겨주는 엄마, 정겨운 방, 푹신한 침대.
 
그 중에서 없는 사람, 없어질 사람. 마루. 쌍둥이 오빠이자, 곁에 늘 같이 있자던 사람.
 
미르:( 서러움이 벅차 오릅니다. 그저, 가족들과 평범한 일상 보내고 싶다는 그 작은 일 하나 하기 이리 어려워서야. 무어 하나 하지도 못하고. )
 
이때까지 모두들 똑같이,
 
과거에서, 멸망에서 벗어날려고 하지만.
 
모두 똑같이, 힘없고 약했습니다.
 
그건 이때까지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그랬고, 마루가 그랬고, 곧... 미르 자신이 그렇게 될지도 모릅니다.
 
서러움과 슬픔이, 외로움을 가득 채울 때, 미르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미르:(빨리 죽어도 괜찮으니까. 딱 하루만... 다른 친구들처럼 평범하게 가족들이랑 밥먹고 이야기하고 놀고 다 같이 자면서 특별한 일 없는 거 하나 하고 싶다는 게 이리 크고 힘든 일이라는 게 서럽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슬픔을 소리내어 울 수도 없고, 이야기할 수조차 없으며, 누구에게도 풀어낼 수 없는 지라 더욱 더 슬픔만이 몰려옵니다. )
 
애초에 이건 옳은 방향일까요?
 
져가는 노을에 그림자가 기우는 것처럼 우린 그저 멸망을 기다릴수 밖에 없는걸까요?
 
무더운 열기에 녹아내리는 아스팔트처럼 당연히 누려야 될 삶을 빼앗길 수 밖에 없는걸까요?
 
여름은 너무 뜨겁고,
 
미르의 어깨는 무겁습니다.
 
...
 
한참을 가만히 있으면 방문을 작게 두드리는 소리가 납니다.
 
미르:( 애써 안 운 척 침 삼키고 눈물 닦아내고선 말합니다. ) ... 으응, 들어오세요...
 
엄마: 딸, 자고 있었어? 들어오면 바로 씻어야지. 먼지도 많은데.
 
미르:으응, 어차피 곧 가야할테니까... 금방 갈 것 같아서 나중에 가면 씻을까 해서요...
 
엄마: 응. ...우리 딸. 미안해. 아무래도 마루에 대한걸 말하지 않았으니까. 마루가 비밀로 해달라고 했거든.
 
미르:... 아니에요, 괜찮아요. 학교에서 다 들었어요. 마루 전학간다는 거. ... 마루가 저 생각해서 한 말이겠죠. 환경이 바뀌면 금방 또 몸 안 좋아질테고. ... 이 학교가 병원에서 가장 가깝잖아요. 그러니 여기 있어야겠죠. ... 또 병원에 오랫동안 있을 순 없잖아요.
 
엄마: 응. 마루가 그러더라 전학가는거 말하면 막 울거니까 나중에 말한다고. 요즘 마루도 독서실에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학교에 들어갈거래. 그래서 대학도 좋은 곳 가서 미르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게 한다고.
 
미르:... 그런 거 보면 미안해요, 마루한테. ... 나때문에 잘 놀지도 못했을텐데. 걱정도 많이하고 저 챙겨준다고 고생도 많이 했을텐데. ... 있죠, 아까 학교에서 마루랑 싸웠어요. ... 말다툼이였긴 했지만. ... 마루가... 화내는 건 처음 봤어요, 그때. 한 번도 화 안 냈었는데. ... 그래서, 그래서. ... 나도 화나서 속상해서 그냥 집으로 와버렸어요. ... 병원 가 있으면 더 속상할 것 같아서요. 병원에는 이야기할 사람이 없잖아요.
 
엄마: 아이구... 우리 딸 속상했겠네. 마루도 마음에 없던 말이었을거야. (서툴지만 다정한 손으로 미르의 앞머리를 넘겨줍니다.)
있지 미르야. 말은 안해도 엄마 아빠는 항상 너희 남매가 우리 아들 딸이라서 정말 행복하단다. 미르를 보살펴주는 마루랑, 마루를 생각하는 미르를 볼 때마다 행복해.
그리고, 우리 아들 딸이니까 아는거야. 미르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을 할 때가 올거야. 이미 어렸을 때부터 미르 너는 알겠지만, 세상에 하고싶은 일이 많지 않고 어려울 때가 있어.
그 때 미르는 어떻게 하고 싶어? 어떻게 하면 후회하지 않고 보람찬 인생을 살 수 있을까?
 
미르:.... ( 엄마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더니 잠시 생각해보다가 말합니다. ) ... 가족들이랑 다른 애들처럼 평범한 삶 한 번만 사는 것 만으로도 후회하지 않고 보람찬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생각은 변하지 않나봐요, 어릴 때부터. ... 제가 아프니까 엄마 아빠도... 다 나 챙기느라 힘들었었고, 마루도 그만큼 혼자 있던 시간이 많았을 거 아니에요. ... 그러니까, 둘 다. 다른 친구들처럼 있지 못했을 테니까. ... 그거 한 번이라도 해보면 그만큼 보람찬 인생은 없을 것 같다라고.... 생각해요, 저는.
 
엄마: 응. 그런데 마루는 전학가려고 하고, 미르 말도 안듣고 그랬겠네. (살풋 웃어요.) 엄마 아빠는 힘들지 않아. 미르가 건강하게만 자랄 수 있다면 무엇이든 좋다고 생각해서 병원에 데려갈려고 했었지. 미르에게는 나쁜 기억이겠지만 그건 다 너를 위한 일이었어. ...그래도 미르는 싫었지? 맨날 병원 얘기 하면 도망갈려고 했으니까. (작게 웃어요.) 지금도 그렇겠네. 마루가 뭘 하든, 미르가 싫다면 그건 너에게 있어서 싫은 일이야. 너를 위한 일이어도.
미르야.
엄마랑 약속 하나 할까?
 
미르:( 말 없이 듣고 있다가 바라보더니 ) 무슨 약속이요...?
 
엄마: 응. 미르가 이제부터라도 보람찬 인생을 살기 위한 약속.
네가 원하는걸 해보렴. 후회한다고 해도, 아프더라도, 안해보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해보고 후회하는게 좋지 않겠어?
고집도 피우고, 떼도 쓰고, 남매 싸움도 해보고, 밤늦게 돌아다니는건 정말 걱정되니까 그건 하지말고.
네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하는걸로. (미르를 가만히 바라봅니다. 미르에게 눈물 자국이 있더라도 그걸 보더라도 말하지 않습니다.)
 
미르:( ... 잠시 말 없이 있다가 품에 꽉 안기더니 말합니다. ) ... 오늘 병원에서 안 자면 안 돼요? ... 집에 있을래요. ... 하루만.... 이라도...
 
엄마: 아이고, 바로 떼쓰는거야? 알겠어. 아빠한테도 말해놓을게. 그래도 약은 꼭 먹고, 아프면 바로 말하고, 알겠지? (작게 토닥입니다.)
 
미르:... 쓸래요. ... 병원에는 제가 말 해둘까요? 약은 먹을거고 아프면 바로 말 할테니까...
 
엄마: 응. 의사 선생님께 걱정 안되게 말씀드리고. 그럼 엄마는 갈게. (방문을 열고 거실로 향하는 발소리가 들립니다.)
 
미르:네. ( 가시는 거 보더니 다시 침대에 풀썩 눕습니다. 눈물자국 완전히 지우려고 손꿈치로 쓱쓱 닦아내고서는 기운내고 일어납니다. 그래도. 지금은... 기운을 내야하니까. )
 
엄마가 있었던 곳에서 희미한 온기가 아직 남아있습니다.
 
누군가의 온기는 이처럼 따뜻합니다. 덥지도, 춥지도 않게.
 
미르는 무엇을 하나요?
 
미르:( 온기를 조금 더 느끼다가 마루가 언제 올련지 창문만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할 일도 없으니까... )
 
마루랑 맞짱(아님)을 뜰려는거군요.
 
미르:( 언제까지나 이 상태가 지속되면 안 되는거잖아요 )
 
날은 저물고, 계속 저물고... 그렇게 밤이 됩니다.
 
날이 너무 늦었는데도 마루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설마 집에도 안 들어올 생각인걸까요?
 
미르:( ... 설마.... 하면서 그저 바라보기만 합니다. )
 
마루가 올 때까지 생각을 정리해봅시다.
 
미르는 어떻게 하고싶나요?
 
과연 마루의 행동은 미르를 위한 것일까요?
 
미르:( ... 내 고집이 과연 마루를 위한 것일지... )
 
하지만 마루의 고집이 과연 미르를 위한 것일까요?
 
역시 쌍둥이. 둘이 결국은 똑닮았습니다.
 
미르:( 피식... )
 
미르가 원한다면, 이 10년, 혹은 2년이 될 이번 생.
 
하고싶은 것을 하더라도 그 누가 무어라 할 수 있을까요?
 
둘은 닮았기에,
 
너무 똑닮았기에,
 
그렇기에 서로 마음을, 실은 알고 있기에.
 
이야기 해본다면, 분명.
 
...
 
밤이 너무 늦었습니다.
 
부모님도 다른 말이 없는 걸 본다면 또 미르에게 말하지 않고 외박이라도 하는 거 같네요.
 
눈꺼풀이 무거워집니다.
 
하고픈 말이 있다면 내일, 또 다시 더운 열기에서 두 사람의 그림자가 짙어질 때.
 
그 때 해보는건 어떨까요?
 
미르:( 내일이 마지막일텐데.... )
 
맞아요. 내일이 마지막. 그러니까 분명 그 때에는...
 
...
 
잠이 쏟아집니다. 미르의 눈은 어느새 눈꺼풀 뒤인지 밤하늘을 보고 있는지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게 까무룩, 잠이 들어갈 때.
 
누군가 방 문을 열고,
 
발걸음 소리가 들립니다.
 
미르:( 앉아서 꾸벅꾸벅... )
 
마루:(정말. 예상한대로...일까요... 집에 올 줄 알았습니다. 게다가 졸고 있다니. 분명 자기를 기다리고 있던거겠죠. 그러니까 늦게 오려는 건데도.)
...
(내가 졌다. 졌어.)
 
미르의 손을 잡아 손을 펼치고 손바닥 위에 무언가를 씁니다.
 
익숙한 그 감촉.
 
' 내일 만나자 '
 
...
 
아침이 밝았습니다.
 
너무나도 익숙한 천장, 포근한 침대, 많은 인형... 미르의 방입니다.
 
그러고보니 어제는 병실이 아니라 집에서 잤죠.
 
미르:( .... 분명 앉아서 존 기억까지 있는데.... 누워 있는 거 보고 메엥... )
 
비록 마루와는 만나지는 못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오늘 몸상태도 괜찮은거 같습니다. 병원에서도 연락이 따로 오지는 않았네요.
 
등교를 준비할 시간, 미르는 무엇을 하나요?
 
미르:( 이마 만져보고 열 안 나고. ... 부스스 일어나서 씻고, 교복으로 갈아입은 뒤에 아침 먹으려고 비척비척 내려가봅니다. )
 
많이 오래된 기억이겠지만, 미르가 생각하는 미르네 집안의 아침 풍경은 어땠나요?
 
미르:( ... 그나마 가까운 기억에선... 부모님께선 일하러 가셨고, 식탁 위에 물병이랑 아침이 차려져 있었고, 고요했죠. 마루가 있으면 서로 마주앉아서 먹기도 하고,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
 
기억과 비슷하게 식탁 위에 물병과, 아직 따뜻한 식사가 식탁 위에 놓여져 있습니다.
 
다른 점은 마루가 없다는 것일까요?
 
미르:( 먼저 갔으려나.... )
 
애초에 어제 집에 왔었을까요?
 
아니, 왔겠죠. 손바닥의 촉감. 그려본다면 희미하지만 떠오른 글자.
 
미르:( ... 졸던 마당에 흐릿하게 본 것 같은 기분이 들기는 한데... )
 
한 집에 있는데도 만나기 어려운 가족들. 모두 미르를 두고 각자의 할 일을 하러 갔습니다.
 
미르:( ... 익숙한 일이니까. 그냥 조용히 가방 들고 내려와서 아침이나 챙겨먹으려 합니다. )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이제 없을지도 모르는데도 다같이 만나는 시간이 소중한지도 모르고...
 
이대로 식사를 하고 학교로 향하나요?
 
미르:( 그럴 수밖에 없을테니까.... 그 이유가 있을테니까... 일단 이대로 식사를 하고 학교로 향합니다. )
 
...
 
학교는 예상대로 떠들썩합니다.
 
학생들은 교실에 모여 여름 방학식을 할 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미르 역시 마찬가지겠죠.
 
하지만 집과 마찬가지로 학교에서도 미르는 마루를 만날 수 없었습니다.
 
학교에 나오지 않은 걸까요? 아니면 미르를 피하고 있는 걸까요?
 
미르:( ... 모르겠다.... 하나도 모르겠어, 진짜.... 그냥 멍하게 턱 괴고 창밖만 보기 0
 
창 밖은 푸른 하늘에 뭉게 구름이 선명한 그림자를 내며 떠있습니다.
 
매미 소리, 아이들의 수다 소리,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소리, 선풍기 소리...
 
미르와 마루가 만나지 않자 유인물에 적힌 멸망의 시간은 줄어들지 않고 여전히 2년입니다.
 
이대로라면 마루의 말대로 10년까지 되돌아가겠죠. 10년 뒤엔...
 
...미르는 10년 동안 무엇을 하고 싶나요?
 
몸을 무리해서라도 여행을 떠나도 좋겠고, 새로운 취미를 발견해도 좋겠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도 좋겠습니다.
 
미르:( ... 10년... 동안... 그 중의 9년은 병원일텐데. ... 크게 원하는 것은 없는 것 같네요. )
 
그래도 살아있을테니까요. 멸망한 세계 가운데 보다는 그래도 평화로운 세상에서 지내는게 좋지 않을까요?
 
미르:( .... 죽으면 아프지도 않고 좋을텐ㄷ... 아니야, 이런 생각은 말자. ... 나쁘진 않겠죠... 소중한 이들이랑 다같이 있는다는 조건 하에서라면... )
 
생각이 거기까지 도달할 때,
 
한껏 높은 습도와 온기를 자랑하던 교실 안 스피커에서 방송이 흘러나옵니다.
 
‘곧 강당에서 여름 방학식을 할 예정이니, 학생들은 모두 강당으로 모여주세요. 다시 한 번 알립니다. 곧 강당에서 여름 방학식을 할 예정이니, 학생들은 모두...’
 
기다리고 기다리던 방송에 반에 있던 아이들이 빠져나갑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줄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시고 소란을 잠재웁니다.
 
반 아이들의 표정은 찬란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행복으로요.
 
미르:( ... 바라봄. 조용해지면 천천히 올라가야지. )
 
미르, 당신도 방학이니까 행복한가요?
 
미르:( 그냥 평소같아서 크게 감흥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좀 다르려나. ... 마루를 하루종일 보지 못 했으니까 살짝 우울하기도 합니다. )
 
미르는...
 
어떤가요? 세상이 이렇게 부조리하게 멸망하는 거에 대해서요.
 
미르:( .... 아직은 어렵게만 느껴집니다. 그야, 이제 18살만 살았는데... )
( 그래도.... 좀 더 있다가 내가 죽은 뒤에야 멸망하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도 드네요. )
 
아직 하고싶은 것도 해보지 못했으니까요. 특히 미르는...
 
세상을 다시 시작할 사람이 이제 자기가 되었다니, 한편으로는 아득하다고 느껴집니다.
 
미르의 선택에 모든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삶을 다시 한 번 더 살지, 미르와 함께 모두 잠에 들지.
 
이기적이며 부조리한 세상에 법칙에 휘말린건 미르와 같은 사람들인데도 여전히 숨막힐 정도로 무겁습니다.
 
미르:( ... )
 
미르는 만약 할 수 있다면,
 
세상을 구하고 싶나요?
 
미르:( ... 세상을 구할 수 있다면야? 해야지요. 멸망을 막을 수 있으면... )
( ... 난 죽어도 괜찮.... 으려나.... 세상을 구하면.... )
 
마루 울겠어요.
 
미르:( ... )
 
세상이야 구하고자 마음을 먹는다면 할 수는 있을 겁니다.
 
다만... 수 많은 반복이 일어나야겠지요.
 
어쩌면 미르 안의 모든 것이 다 바스라질 정도로 아득한 시간이 걸려야 알아낼 수 있는 진실일지도 모릅니다.
 
...소란스러움이 멎습니다.
 
어느 새 교실에는 미르뿐이네요.
 
미르:( 아, 가야겠다. ... 그제서야 몸을 일으킵니다. )
 
방학식에 빠질 수는 없으니까 미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선생님께서 미르를 부릅니다.
 
선생님: 남은 애가... 아, 미르.
 
미르:( 눈꿈벅. )
 
선생님: 미안하지만, 미술실에 가서 아이들이 제출했던 숙제들을 가져다 올 수 있을까?
 
미르:( 기웃? ) ... 무슨 일 있어요?
 
선생님: 그게... 미술 선생님께서 미술실에 놓아두셨다는데 바빠서 가져오지를 못했거든.
너에게 시키기 미안하지만 방학식에 맞춰서 아이들에게 나눠 줄 예정인데 시킬 학생들이 다 먼저 뛰어나가서...
 
미르:으응.... 알겠어요. 가지고 올게요. ( 고개 끄덕하고서는 미술실 쪽으로 향해봅니다. )
 
어제 마루가 미술실에 놓아두었던 그 박스를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 그럼 부탁해. 강당에서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천천히 오렴.
 
미르:네에에. ( 길게 대답하고 터덜터덜 )
 
선생님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빈 교실을 점검 후 강당으로 이동합니다.
 
...미술실에 가면 마루가 있을까요?
 
그렇게 울면서 가버린 마루의 얼굴을 다시 마주하는 것도 꺼림직한 일이 될 수 있겠지만요.
 
미술실에 들어가자 어제와 똑같은 풍경이 보입니다.
 
나란히 놓여진 의자와 책상들. 아무도 없는 미술실 내부.
 
다른 게 있다면, 창 밖에는 저물어가는 노을이 아니라 새파란 하늘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
 
미르는 탁자 앞으로 가 마루가 어제 정리해서 놓아둔 내용물들을 챙깁니다.
 
미르:( 주섬주섬... )
 
그림들과 글의 주제는 전부 '멸망'에 관한 것입니다. 왜 이런 것들만 있죠? 이제는 이런 것들까지 바뀌어버린 걸까요?
 
생각을 해보고 싶다면, 미르. 지능 판정.
 
미르:
지능
기준치: 50/25/10
굴림: 90
판정결과: 실패
 
강행하나요? 아니면 이대로 하나요?
 
미르:( .강행. )
 
고.
 
미르:
지능
기준치: 50/25/10
굴림: 35
판정결과: 보통 성공
( 예쓰 )
 
굿.
 
“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
 
며칠 전 교실에서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목소리가 생각납니다.
 
아. 그때 선생님의 말씀이 ‘멸망’이 주제였죠? 비록 작문은 ‘여름’을 주제로 했지만 미술은 ‘멸망’을 주제로 한 걸까요?
 
미르:( 신기하구만.... 그림 하나하나 바라봅니다. )
 
다들 제각기 다양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진짜 멸망한 세상을 그린 작품은 손에 꼽고, 대부분은 멸망 전 하고싶은 희망을 그린게 많습니다.
 
미르:( .... 희망들 바라봅니다.... )
 
소원을 비는 그림, 친구들을 그린 그림, 돈다발을 그린 그림, 가족과 식탁에 앉은 그림, 놀이동산에 간 그림...
 
미르:( ... 멈칫. 마루 없지 힐끔. )
( 다시 그림 봄. )
 
...미술실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미르:( 휴우 )
 
다시 그림을 보면 그림체도, 사용한 미술 도구도 다들 제각각입니다.
 
여러 형태의 멸망 속 희망들이 여름빛처럼 찬란하게 도화지를 비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림들 사이, 아지랑이처럼 나풀거리는 종이가 박스 가장 구석에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내용물을 살피고 싶다면 관찰력 혹은 자료조사 판정.
 
미르:
관찰력
기준치: 85/42/17
굴림: 13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 오에 )
 
굿.
 
숙제를 정리하다가 그림과 글들 아래에 놓여진 <원래 여름이란, 파도를 건너가는 것> 이라고 적힌 제목을 발견합니다.
 
푸른 하늘과, 여름 구름, 누군가의 모습.
 
살펴보나요?
 
미르:( ... 살펴봅니다. )
 
새파란 하늘이 그려진 그림. 물이 많은 물감으로 번진 푸른 하늘에 하얀 구름이 퍼져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운동장, 교문 앞에 서 있는 두명의 사람만이 그려져 있을 뿐입니다. 언제 그린건지, 누가 그린건지 알 수 없습니다.
 
이름도 반도 없으니까요.
 
미르:( 뭐지.... 눈 꿈벅... )
 
교문 앞에 서 있는 둘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한적하고 조용하고. 그 둘의 이어진 그림자. 천진난만한 얼굴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림 아래, 짧은 작문이 쓰여 있습니다.
 
미르:( 글 보자마자 바로 마루라는 걸 눈치챕니다. .... 보고 싶을 거라니, 어디에 있어서 보고 싶다고 말 할 수 있는 건지. 이런 건 마루가 아닌데. 잠시 멍하게 생각하다가 종이를 내려두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크게 한숨을 내뱉습니다. )
 
'우리는 항상 같은 일을 반복했다. 여름 내내. 여름이라고 불리는 그 시간동안.'
 
우리는 반복되는 시간 속에 존재합니다.
 
우리가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이 더위. 혹은, 절망스러운 미래에 갇힌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서 해야 하는 일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벗어날 수 없다면 슬퍼하기만 해야 하나요?
 
달라질 수 없다고 이미 한 배에서 태어나 생애 처음부터 같이한 우리가 이별해야 하나요?
 
마루를 만나러 가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그림 안에 그려진 두 사람의 존재를 미르는 이미 깨달았을 테니까요.
 
푸른 여름 하늘 아래의 두 사람. 세상에서 가장 서로를 잘 알아는 사이.
 
마루는 미르가 무사히 여름방학을 맞이하는 모습을. 아무도 없는 운동장에서,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겠지요.
 
그리고 또 아무 말도 없이 여름 하늘을 등지며.
 
이전과는 다른 헤어지기 위한 방향으로 작별할 겁니다.
 
그것이 세상, 아니 미르가 무사히 안전한 삶을 살아갈 순간이니까요.
 
<원래 여름이란, 파도를 건너가는 것.> 을 다 읽은 미르의 발 아래로, 상자 안에서 종이 한 장이 떨어집니다.
 
미르:( ... 종이 한 장 주워보고 )
( 유인물에 멸망까지. 라는 말 보더니 이젠 그냥 다 찢어버리네요. 보고 싶지도 않다는 듯 )
 
미르의 손에 힘없이 찢겨나간 종이쪼가리들.
 
나폴나폴 떨어져 바닥 위에 흰 얼룩을 남깁니다.
 
2년.
 
아직 멸망까지 2년이 남았습니다.
 
미르가 지금 마루를 만나러 가면 시간은 다시 줄어들겠죠. 이번에는 몇 년이 남을까요?
 
10년에서 8년으로. 8년에서 6년으로. 6년에서 4년. 4년에서 2년. 2년에서
 
미르:( .... 바로 오늘... )
 
…미르의 예상대로 다음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남은 시간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몰라요.
 
고요한 미술실을 가득 채우는, 다시 안내 방송이 흘러나옵니다.
 
‘곧 강당에서 여름 방학식을 할 예정이니, 학생들은 지금 모두 강당으로 모여주세요. 다시 한 번 알립니다. 곧 강당에서 여름 방학식을 할 예정이니, 학생들은 지금 모두 강당으로 모여주세요.’
 
미르:( ...아까 다 안 모였나....? )
 
마루를 만나러가는 게 맞을까요? 예정되어 가까워지는 멸망을 뒤로하고?
 
아니면, 미르. 당신을 부르는 듯한 열여덟 여름을 시작하는 '여름 방학식'에 가야 하는 게 맞을까요?
 
미르는 선택해야 합니다.
 
작열하는 하늘 아래에서 녹는다 하더라도...
 
혹은 깊고 깊은 바다에 잠겨 가라앉는다고 하더라도...
 
후회를 안고 살아가더라 하더라도...
 
누군가의 결심을 방해한다 하더라도...
 
이 선택이 모든 걸 결정할 겁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고 싶나요?
 
미르:( .... 찢어진 종이 사이에서 멸망, 이라는 단어를 만들어서 바라봅니다. 어차피 자신의 목숨은 언제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고, ... 열여덟 여름을 시작해도 할 수 있는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당연하게도 약한 몸은 그러기 위해 태어난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 평범한 일상을 원하는 것은 너무나 큰 죄를 지어버렸나봅니다. ... 아프지 않고 싶단 소원을 매일 빌어서 그랬나, 내가 태어나서는 안 되는 존재여서 그랬을까, 서러움이 몰려옵니다. 왜 이런 시련밖에 나에게 주지 않는 것인지. 시련 후에 찾아오는 희망과 행복은 존하지 않는 것인지 서럽기만 합니다. )
( ... 몰려오는 설움을 꾹 참은 채 그림을 챙겨들고 교실을 나갑니다. 마루를 일단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 어떻게든, 어떻게든. ... 제 마지막에는... 소원하던 걸 하고 싶다고. )
 
어제는 이곳에서 마루는 울었죠.
 
하지만 오늘 미르는 꾹 참으며 일어섭니다.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열여덟 여름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다시 돌아온 10년 전의 과거가 결코 아름답지 않을 거란 사실 또한 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만났습니다. 다음 과거에서는 슬퍼하지 말자고요?
 
그렇다면 다음 과거에서의 여름은, 누구와 함께 있어야 하나요?
 
미르는 미술실을 나옵니다.
 
안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하고 후회할건가요?
 
미르:( 안 울려고 입술 꽉 깨물고.... ) 하고 후회해야지. .... 이제는 나도 선택하고 살고 싶으니까... 후회하면서 크는 거랬어. 실패도 하고.
 
알고 있습니다. 후회는...
 
쌓여가며 삶의 일부가 되는 것.
 
미르, 가봅시다. 이 작열하는 여름에서 당신이 원하고자 하는 일을 하러.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더라도, 놓칠 수 없는 것을 찾아서.
 
미르:( 종이 꽉 챙겨들고 출발합니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마루를 찾으려고. )
 
...
 
미르는 교문으로 달립니다.
 
흘러나오는 안내 방송은 더 이상 들리지 않습니다.
 
선생님께서 부탁했던 심부름도. 열여덟의 여름 방학식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밖으로 나오자 여름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무더위가 피부 위에 내려 앉습니다.
 
곤두박질치는 것만 같은 푸른 하늘이 시야에서 지나쳐 흘러갑니다.
 
멀리, 마루의 뒷모습이 보입니다.
 
미르:( 조금 더 빨리 뛰어봅니다. )
 
교문을 막 나가려고 하는 모습. 이번에 놓치면 다시는 보지 못할테죠.
 
마루는 '다음 과거'를 위해 미르를 떠나려고 했으니까요.
 
미르는 조금 더 빨리 뛰어갑니다.
 
고르지 못한 숨, 벅차오르는 호흡, 후들대는 다리.
 
그러나 그런 것들을 제치고서 해야 할 말이 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지금 바로 지구가 멸망해버린다 할지라도 반드시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미르:마루야..!!!!!
 
미르는 마루를 불러 세웁니다.
 
무엇이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게 원망이든, 질책이든. 슬픔이든. 무엇이든.
 
불러 세워진 마루는 뒤돌아서 미르를 바라봅니다.
 
말을 해봐요. 무엇이든 말해봐요.
 
미르:( 마루를 바라보니까 목끝까지 서러움이 차오르기 시작합니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오기 시작하면서 들고 있던 그림또한 바닥에 놓치면서 주저앉습니다. 이 망할 체력 때문에 숨도 거칠게 헐떡거리면서. )
 
마루:(방학식에 있을 미르가 여기까지 온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혼란스럽지만 미르가 주저앉자 반사적으로 미르 곁에 옵니다. ...헤어지기로 했는데 이렇게 또 와버리고맙니다.)
 
미르:나, 나, 나아.... 헤어지기 싫어... 응...? 가지 마아... ( 설움에 목이 막혀와 말도 똑바로 나오지 않고 웅얼거리는 목소리입니다. 어느새 눈물은 제 볼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결국 서럽게 엉엉 크게 소리를 내며 울음을 터트리고 말합니다. ) 마루에게도 미안하고 다른 친구들도 부모님도 너무 미안하지만 나도, 나도 하고 싶은 거 하고 싶었단 말이야!! 마루가 없어지는 것도 싫고, 그냥, 그냥 가족들이랑 다른 애들처럼 놀고 먹고 자고 쉬고 싶고 그러고 싶은 소원 한 번 하고 싶은데 왜, 왜 마루도 못 들어주고 엄마 아빠도 못 들어주고 세상도 못 들어주는 건데..!!
 
마루:... ...(가만히 미르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우는 미르의 모습에 천천히 등을 쓸어줍니다. 서러움이, 감정이 전이되는거 같습니다. 자기도 괜히 눈 앞이 시큰해집니다. 애써 울컥거리는 감정을 삼킵니다.) ...왜... 왜 내 마음을 몰라주는건데... 미르 너도... 너도... 너도, (입 다물다가) 나는 이제, 너, 너를 보기 싫어. 그런데 왜... (마음에 없는 소리까지 해댑니다.) 말을 안들어주는거야. 내 소원은, 내 소원은 네가 행복하게 아무 책임 없이 세상을 살았으면 좋았는데, 하루라도 더 ...
 
미르:행복하기는!! 너가 반복해왔으면 알 거 아니야!! 나 그 때동안 매일 아팠던 것도 알거고. 매일 약에 시달리는 것도 알고 있을 거고, 병원에서 혼자 지내야하는 것도 다 알고 있잖아! 그거 하나도 안 행복해, 힘들어! 근데, 근데 나 마루 때문에 다 참고 버텨오고, 마루랑 같이 집에서 놀 생각 하면서 다 버텨냈는데, 너까지 없으면 나 이제 어떻게 버텨내라고!! 나, 나 이제 너무 힘들단 말이야.... 마루도 내 맘 몰라주잖아!!! ( 뺴액 소리치다가 뒤에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웅얼거리면서 더욱 서럽게 웁니다. )
 
마루:너... 나는... 나도... (이쪽도 웅얼거립니다 이내 입을 다물고 그냥 팔을 둘러 안습니다. 시선이 내려가 미르가 들고 있는 종이를 향합니다. ...그것이 삼킨 감정을 도로 내뱉어서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집니다. 종이 위로. 둘을 그린 여름 위에.)
 
미르:( 품에 안기자마자 그대로 마루를 꽉 끌어안습니다. 어떻게든 진정해보려는 듯. 그치만 그 설움이 크게 사라지지 않는 것인지 계속 히끅거리고 있습니다. )
 
마루:...(가만히 쓸던 손이 떨립니다. 자기는 이런 모습이 한심한데도 미르가 울면서 헤어지기 싫다고 말하는건 왜이렇게, 왜 이렇게 슬프면서도 기쁠까요? 모순되었습니다. ...아니, 반대 손가락으로 꾹 누른 종이 위에 줄을 그은 글자. 보고싶을거야. ...입을 엽니다.)
미르 너는... ...너 진짜 못됐어. (괜히 장난스러운 말을 합니다.) ...이럴 때 소원 얘기 하다니, 정말 못됐어. 너무한거 아니야?
 
미르:나 못됐어, 응. 못된 짓 할거야. 나, 나, 다 할거야. 내 평생 소원이였어. 괜찮아졌다고 해도 가족들 다 나 걱정하는 모습 보고 싶지 않았단 말이야. 어릴 때처럼, 가족들이랑 한 방에서 다 같이 자고 일어나서 아침 먹고, 마당에서 놀고 그러고 싶었는 걸. ... 마루 없이는 그거 못 한단 말이야.
 
마루:(고개 숙여요. 결국 자기도 설움을 쏟아냅니다.) 나도 미르 너랑 같이 있고 싶었어. 언젠가 다가올 멸망이 두려워도... 항상 미르 네가 옆에 있었으니까 버텼어. 평범하게 학교에 다니고, 가족들이랑 밥먹고, 잘못하다가 혼나고, 널 보러 병원에 가고 그런게 정말... 정말 소중했는데... 정말... 생각 없이 살았을 때... 어떨 때는 멸망도 잊을 정도로 좋았는데... 그랬는데... 나, 나... (다시 횡설수설합니다.) 미르 너한테 그런 일 겪게 하고싶지 않았는데... 세상에 매일을... 어느 순간, 행복보다 다가올 멸망이 더 선명해서 두려워지는게, 그래서 미르가 무서워하는걸 보고 싶지 않았는데... 정말...
 
미르:삶을 반복해도, 멸망하기 전까지 삶을 더 산다고 해도.... 어차피 난 아파, 쭉 아플 수밖에 없고, 그냥... 너만 없어지는 것 뿐이잖아. ... 그런 게 더 싫어, 우리 돌아가자, 응? 이정도면 충분하잖아. ... 나 고집 더 부릴거야. 너 간다고 하면 다리 부여잡고 맨바닥에서 끌려갈거야. 울어서 열나면... 마루가 울렸다고 온 동네방네에 소문내고 다닐거고, 마루가 나 아프게 했다고 다 소문내고 다닐거야. 나 나쁜 짓도 다 할거고... 마루가 다 후회하게 할거야....
 
마루:진짜 너무하다 정말... 이때까지 같이 지낸 정이라도 있으면 그런 말은 안해야지... (작게 웃어요. 눈물이 흘러도 헛웃음이 나오는건 참을 수 없는거 같았나봅니다.) 아니 먼저 너무한건... 나야? 그런가...~...
 
미르:그런 거야. 나한테 화내고 울고.... 너무 했어. ... 집에 왔는데도 나 한 번도 안 봐주고. ... 나 엄청 기다렸는데. 아침에도 안 보이고. ....
 
마루:...그야 너도 나를 보면 시간 줄어들까봐... (우물대요...)
...있잖아 미르야. 너한테 나는 뭐야? (힘없이 웃어요.) 나... 이 정도로 너한테 소중한 사람인거 몰랐어. ...아니 헤어져야되니까 알고싶지 않은것도 있지만... 그래도 지금은... 응... 듣고싶어... 당장 어제만 해도 들으면 괴로울거 같았는데 왠지 지금은, 들으면 기운이 날 거 같아서...
 
미르:... 나한테 마루는.... ( 잠시 으음. 하는 소리를 내다가 꽉 끌어안더니. ) 둘도 없는 내 쌍둥이 오빠. ( 그렇게 말하면서 뜸을 들이다가 더 이어말합니다. ) ... 그리고, 내 유일한 친한 친구, 내 버팀목, 그리고.... 가장 소중한 사람
 
마루:...(결국 힘없는 웃음이 큰 웃음으로 번집니다.) ...뭐야 그 말... 유일한 친구라니, 진짜 너 친구 사겨야겠다... (한참을 끅끅대며 미르의 품 안에서 웃다가 자기도 더 힘주며 안아줍니다.) ...나도, 너를 둘도 없는 쌍둥이 동생에, 처음부터 친한 친구, 지켜줘야되는 사람,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러니까 약속 하나 하자.
미르 네가 과거를 몇 번이고 가도, 아니면 언제부턴가 되돌리지 않는다고 해도, 또는 어떻게든 멸망을 막는다고 하더라도...
절대 괴로워하지 않기. 참지 않기로. (눈물을 한 번 닦아요.) 소중한 사람이 괴로워하는건... 보기 힘들잖아.
 
미르:아파서 친구 사귈 시간도 없어, 좀 친해졌다 싶으면 또 입원해서 못 나오고 그러는데. 수업도 똑바로 못 듣고 말이야. ( 꽉 끌어안고 있다가 약속하자는 말에 잠시 얌전히 듣더니 ) .... 응, 약속할게. 괴로워하지 않고, 참지 않고.... 응. 마루도 그렇게 해줄거지?
 
마루:나 참...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거 아냐? 소중한 사람이라고 말했으니 나도 그래야겠지... (내가 졌다, 졌어의 말투로 말해요.)
 
미르:( 피식 웃는 소리 내더니 그제서야 마루를 바라봅니다. 가득 울어서 붉어진 볼과 눈가에 아직도 눈가에 눈물이 가득 맺혀있지만 웃어보입니다. )
 
마루:너 얼굴 봐 진짜 심각해 (푸하핫 웃습니다. 정작 마루도 같은 모습입니다. 당연하죠 이란성이지만 생긴건 완전히 닮았으니까요.)
 
미르:너도 마찬가지거든? ( 같이 꺄르륵 웃다가 먼저 일어나더니 마루를 일으킵니다. ) 돌아가자, 나 학교 마음대로 뛰쳐나온거라서 엄청 난리났을걸?
 
마루:응~ 그런데 이렇게 헤어지지 않았으니 아마 이 세계는 끝나지 않을까... 싶어... 미안한 마음이 진짜 많이 드는데 다음을 기약해야겠네... (시선을 피합니다.)
다음에는... 그래, 병문안도 자주 가고, 몸이 괜찮으면 놀러도 다니고, 공부도... (미르 빤히 봄...) 시켜야겠어. ...그리고 가족들이랑 밥 먹고, 그렇게 매일을 너랑 즐겁게 보내고... (미르가 일으켜주면 일어나더니 손을 뻗습니다. 손을 내밀어 달라는듯이요.)
 
미르:... 오늘 하룻 동안이라도 끝나지 않으면 좋겠다. 이제서야, 좀 편해졌는데. 조금만 즐기고 싶은데. ( 시선 피하는 거 보고도 싱긋 웃더니 )
.... 응응, 그러자. ... 공부느은.... ( 시선회피 ) 그건 안 해줘도 괜찮아. 가족들이랑 저녁시간도 보내, 응. 다 하자. 다음에는... 나도 안 아플게. 안 아플 수 있게 노력할게. ( 뻗은 손 보더니 그대로 잡습니다. 0
 
마루:...나도 옆에서 건강하게 지낼 수 있게 도와줄테니까. (미르를 잔잔한 눈으로 바라봅니다. 나지막하게 말합니다.) 후회하진 않아?
 
미르:... 후회, 후회하긴 해. 다른 사람들의 삶까지 내가 다 무너트려버린 것 같아서 말이야. 그래도... 어쩌겠어, 이게 내 선택인데. ... 후회해도 이미 다 끝났잖아.
 
마루:...(나지막히, 조용히 웃습니다.) 하지만 미르 네가 최대한 덜 힘들어할 수 있게, 옆에 있을게. 다음에는 꼭. ...오해도 생각 차이로 싸우지 않게, 말도 꼭 너랑 찬찬히 나누고, 한 마음으로 지내자.
 
그야 우리들은 둘이서 하나니까요. 수없이 반복되던 멸망 속에서도 함께였으니까.
 
마루가 미르의 잡은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글씨를 씁니다.
 
마루의 행동이 끝나고 나면 푸른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합니다.
 
마치 …그때의 그 여름 노을처럼. 하지만 이게 아름다운 노을이 아니란 걸 알아요.
 
세상은 멸망할겁니다. 미르와 마루의 만남에 의해서. 그리고 다시 시작할테죠.
 
그러나, 우리.
 
다음 이 과거에서도 이 마지막 말만은 잊지 않기로 해요.
 
마루가 매순간마다 미르, 당신의 손에 말 없이 적었던 이 말을.
 
' 내일 만나자 ‘
 
미르:내일 만나자.
 
Ending 1. 멸망한 세계에서 우리는 또 내일 만나자.
 
...
 
PC 미르 / KPC 마루 : 로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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