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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탁:C:: 여름파도 로그 백업

루은07 2021. 9. 11. 18:49

 

  • 개변 항목이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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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에게 여름이란, 커다란 파도를 걸어가는 것.
 
이루어지지 않을 것만 같던 열아홉. 우리의 첫사랑.
 
원래 여름이란, 파도를 걸어가는 것.
 
"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
 
지루하고 따분한 수업이 이어집니다. 베베는 현재 교실 뒷편 창가에 앉아있습니다.
 
깔끔한 교실과 학교. 이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에서도 소문이 난 명문 고등학교입니다.
 
기억과 다르지 않는 고등학교, 언제 그렇게 시간이 흘렀을까요. 3학년인 베베는 당연하듯 있었습니다.
 
교실은 3층. 창 밖을 살펴보면 넓은 운동장이 한 눈에 보이고 나무로 세워 만든 그늘과 의자가 놓여있는 쉼터를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운동장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한적하고 조금은 소란스럽습니다.
 
학생들이 모여 축구를 하고 있습니다. 이 선명한 여름 날이 덥지도 않은 걸까요?
 
10년 전으로 돌아왔어도 달라진 게 없습니다. 똑같은 베베의 자리. 선생님과 학생들. 학교.
 
이 상황이 반갑다고 하기엔 베베는 단 하나. 달라진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세상이 멸망했다는 사실과 경험. 그리고 베베, 자신이 그 때 죽었었다는 것이죠.
 
숨이 꺼져가고 눈 앞이 어둠에 잡아먹혀 더 이상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되었을 때 베베를 관통한 것은 바로 시즈쿠가 자신을 깨우는 소리였습니다.
 
반짝, 반짝. 어둠 속에서 빛나던 건 시즈쿠의 눈물이, 아니면 붙잡은 손가락에 끼워진 결혼 반지가 빛을 반사한 걸까요.
 
베베가 눈을 떠보니 모두가 하교 하고 난 후의 텅 빈 교실 책상에 앉아 잠을 자고 있던 스스로의 모습과 마주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로부터 다음날, 지금 다시 베베는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물론 납득 할 수 없었죠.
 
이해 할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베베, 당신은 다시 돌아 온 이 과거에 살고 있습니다. 멸망했던 세상의 끔찍한 모습도 없고 모두 다 죽고 황량한 세상 위에 절망적인 상황도 없습니다.
 
교탁을 앞에 두고 서 있는 선생님을 오랜만에 봅니다. 어른이 되고 나서 소식도 알 수 없었던 반 학생들의 모습 역시 낯설지만 익숙합니다.
 
수업이 끝나면 항상 그랬듯 시즈쿠가 올테죠.
 
시즈쿠는 알고 있을까요? 열아홉, 여름. 바로 이때. 둘의 사랑이 이루어졌다는 걸 말이에요.
 
베베는 기억하고 있을까요? 고등학교 3학년, 위태롭고 탄산과도 같이 달면서도 시큼털털할 청춘의 마지막 여름.
 
둘은 여름 하늘 아래에서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말을, 이 세상 모든 것들이 행복한 우리를 시샘할 정도로 아름답던,
 
맞잡은 손과 뺨에서 서로의 더운 열기가 새겨졌던, 더운 숨을 지근거리에서 내뱉었던 그런 여름이...
 
때문에 여름은 특별한 계절입니다. 우리들이 새로운 사이로 나아간 계기가 된 시간이니까요. 이틀 뒤면 여름 방학입니다.
 
조사 가능한 구역은 [ 교실 ] [ 교과서 ] [ 책상 ] [ 선생님 ]입니다.
 
하나씩 어디를 조사할 건지 말해주세요.
 
카니스 베베:(납득 할, 이해 할, 그런 시간도 생각도 없다. 나는 여전히, 그때의 그 시절, 마지막 청춘이자 사랑이 이루어졌던 더운 여름 날에 있다.) ...선생님, 뵙고 올까. (꽤나 시간이 지났던 그 시절에 선생님이 아니라, 나의 소중한 여름 날에 선생님을.)
 
베베가 선생님을 본다면...
 
지금 선생님은 교탁에 서서 칠판에 분필로 글씨를 적으며 수업을 하고 계십니다.
 
작문 수업이지만 어쩐지 지금 하시는 말씀을 듣고 있자면 옆길로 좀 샌 것 같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 포도라느니. 지구가 멸망할 때 사과나무가 아니라 포도나무를 심을거라느니…
 
자신의 말을 쭉 이어나가던 선생님은 문득 베베를 바라보더니 베베에게 질문합니다.
 
선생님: 카니스. 너는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무엇을 할거니?
 
선생님은 물론 반 아이들의 시선이 베베에게 몰립니다.
 
우등생인 베베의 답을 듣고 싶었는지 선생님이 질문했을 수도 있겠죠.
 
모든 학생들이 설레며 베베의 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쉬는 시간이 다 되가는지, 교실 복도 창밖을 보면 시즈쿠가 늘 입던 체육복을 입고 베베를 향해 짧게 손을 흔듭니다. 희미하게 웃는 시즈쿠의 수업은 체육이었나 보네요.
 
베베가 질문에 대답 할 때까지 수업을 마쳐주지 않을 작정인지 오늘따라 선생님은 이상하게도 베베의 대답을 재촉합니다.
 
...그러게나 말이에요. 베베는 지구가 멸망한다면 멸망하기 전, 무엇을 할 건가요?
 
카니스 베베:수업과 상관 없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습니다, 선생님.
...하지만,
내일 지구가 멸망하게 된다면, 흔들리는 손, 손가락에 반지가 끼워지길 바라며, 끼워질 수 있도록 노력 할겁니다.
 
반지.
 
반지라는 이야기가 나오자 반 아이들이 어쩐지 소란스럽습니다.
 
그 중에는 특히 여학생들이 "어머, 어머...!" 하는 말이 나옵니다.
 
선생님이 헛기침을 해서 소란을 잠재우고 말합니다.
 
선생님: 좋은 말이구나. 작문에는 여러 생각이 나올수록 좋지. 가지마다 이어가는 걸 마인드맵이라고 하고.
 
흡족한듯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수업을 가르칩니다.
 
다음 살펴볼 곳은 어디인가요?
 
카니스 베베:(그 날의, 그때의 나는 신경 쓰지도 않았을테지만, 그 순간에만 있었던, 그 순간을 보고싶어.) (여학생들의 어머, 어머.. 거리는 소리. 궁금해졌거든 지금. 이 교실도.)
 
교실을 둘러봅니다. 안은 평범한, 어쩌면 좀 더 고급스러운 학교 교실입니다.
 
이제 막 오후를 지난 시간. 머리 끝 까지 올라선 태양 때문에 교실 안은 그야말로 쨍쨍합니다.
 
책상에 엎드려 졸고 있는 학생도 있고 수업을 열심히 듣고 있는 학생들도 존재합니다. 베베의 발표를 듣고 여전히 설레어 하는 붉은 뺨의 학생들도 있습니다.
 
조금 멀리 떨어진 칠판에는 높아지는 온도 때문에 일사병에 걸릴 때를 대비하여 배부된 유인물이 붙어있습니다.
 
관찰력 판정 해주세요.
 
카니스 베베:
관찰력
기준치: 95/47/19
굴림: 89
판정결과: 보통 성공
관찰력
기준치: 95/47/19
굴림: 13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베베가 앉아 있는 곳에서 칠판은 그리 가깝지 않기에, 칠판에 붙어있는 유인물을 확인하기까지 약간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쉽게 볼 수 있던 베베의 눈에 유인물에는 <일사병 예비 방법>이라고 적혀있습니다.
 
그 아래 부제목이 적혀있습니다. [■■까지 앞으로 10년]...
 
지금 당장 유인물을 확인하긴 힘들겠죠. 이자리에서. 다음은 어디를 조사할 건가요?
 
카니스 베베:..이런 기분이구나. (살짝 웃음이 나온다. 선생님의 수업을 듣지 않고, 칠판에 선생님이 써내려가시는 내용이 아니라 다른 걸 보는 기분은.) (칠판을 보았다면, 선생님께 딴 곳을 보고있는 게 아니란 것을 어필하기 위해서는 교과서를 보는게 순서에 맞지.)
 
우등생이니까요. 선생님이 발견하더라도 이상하게 여기진 않을겁니다. 오히려 베베의 시선을 끌게 만든게 무엇인지 더 신경쓰실지도 모르겠죠.
 
교과서를 봅니다. 지금은 문학 시간, 그 중에서도 작문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베베의 국어 교과서는 잘 있을까요?
 
카니스 베베:(교과서는 여전히, 책상 위에 잘 펼쳐있다.)
 
10년 전 기억과 똑같이, 책상 위에 바르게 펼쳐져 있습니다.
 
오늘 작문 주제는 「여름」입니다. 열아홉의 마지막 여름이라 그런걸까요?
 
여름. 여름...
 
학교를 졸업하고 시즈쿠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생각이 납니다.
 
우리들은 10년 동안 똑같은 삶을 살게 되겠죠.
 
똑같은 곳에서 손을 잡고. 아홉 번의 여름을 더 맞이할거고,
 
그때마다 내리쬐는 햇빛이 만든 그림자를 보게 될 겁니다.
 
얼마 안 가 방학이지만, 다음 작문 시간까지 여름을 주제로 글을 써오는 게 숙제라고합니다.
 
늦지 않게 도서관을 가서 책을 찾아보거나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읽어 두는 게 좋을 듯 합니다.
 
다음은 자연스럽게 교과서 옆의 책상으로 시선이 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카니스 베베:(내 책상에는 어떤게 들어있는지, 다음 시간에 쓸 교과서일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일까. 궁금해지네.)
 
베베의 책상입니다. 지금 책상 위는 어떤 모습인가요?
 
카니스 베베:(문학 시간에 맞게 문학 책이 책상 위에 놓여져있고, 필기구들. 그 중 파란색 볼펜을 손에 쥐어본다.)
 
베베에게 있어서, 그 파란색 볼펜은 무슨 의미인가요?
 
카니스 베베:(평상시와 다름 없는 볼펜. 항상 있었고, 항상 손에 갔던 볼펜. 하지만, 지금은, 이 볼펜으로 함께 스터디를 시작했던, 소중한 볼펜.)
 
손길을 따라 시즈쿠와 스터디를 했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사각 사각, 책을 펼치는 소리. 단조롭고 조용한 소리만 이어졌던 둘 만의 시간. 그 속에서 이렇게 관계가 발전될 줄, 그 때는 알았을까요?
 
카니스 베베:(몰랐을지, 알았을지. 결국 내 결심과 행동에 따라 달라지는 관계. 현재의 관계도, 과거의 관계도, 미래의... 관계도.)
 
운명을 만드는 건 결국 우리의 행동이었고, 그로인해 행복했었습니다.
 
...창문 근처에 앉아서 그런건지, 창문이 만들어낸 일직선의 그림자가 베베의 책상에 경계선을 그리며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흔들리는 푸른 잎들이 책상 위에 자신의 흔적들을 새겨놓는듯 합니다.
 
깔끔하고 깨끗한 책상. 책상 사물함 안에 손을 넣으면... 베베가 보통 넣어놓은 물건들이 고스란히 있습니다.
 
베베가 책상을 살펴보고 푸른 볼펜을 쥐어보면 수업의 마무리를 알리는 종이 학교 전체에 울려퍼집니다.
 
선생님: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숙제 꼭 하고, 문학 도우미 학생한테 제출하도록.
 
그에 맞춰서 학생들이 일어나 선생님께 인사를 합니다.
 
삼삼오오 학생들이 자리에 일어나면 아직도 베베를 멀리서 바라보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어지간히 그 발표가 신경쓰였나봅니다.
 
수업이 끝난 후, 시즈쿠를 만나러 가기 위해 자리에 일어난 베베는 칠판 앞으로 가 붙어있는 유인물을 제대로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확인해보실건가요?
 
카니스 베베:궁금하니깐. (칠판 앞으로, 아까 수업시간에 보았던 유인물을 보도록 한다.)
 
그렇게 유인물을 본다면...
 
유인물 속에 기이한 문장이 나열되어 있지만 베베는 그 의미를 잘 알거 같습니다. 산치체크입니다. 0/1
 
카니스 베베:
SAN Roll
기준치: 80/40/16
굴림: 41
판정결과: 보통 성공
 
10년.
 
...베베가 시즈쿠를 만나기 위해 교실 밖으로 나가면 시즈쿠는 물에 조금 젖은 체육복을 입고 베베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학교는 곧 시작될 여름 방학 때문에 분주합니다. 아이들은 자주 소란스러워지고 학교는 기대감에 들뜬 듯한 어지러운 분위기.
 
복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쉬는 시간이 되자 반에서 나와 복도에 모여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자주 보입니다.
 
제아무리 교육열이 높아도 그보다 뜨거운 건 학생들의 방학에 대한 기대니까요.
 
키리가미네 시즈쿠:...수업은 잘 들었겠지? 오늘은 좀 더 더운 거 같아. 복도는 시원하니까... 왔어.
 
시즈쿠는 속보이는 말을 하며 베베에게 말합니다.
 
사실 더운 건 당연한 소리고 베베를 보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일텐데 말이에요.
 
아직도 동급생인데도 말놓는 게 어려운지 자기 할 말은 하고 입을 다물어보이는 어색한 모습을 보이는 시즈쿠.
 
그런 잔잔하고 조용한 모습이 투명하게 번진 것 같은 물방울(雫)과 같습니다.
 
열 아홉 시즈쿠는 그랬습니다. 스물 아홉의 시즈쿠도 그랬나요?
 
카니스 베베:(여전히, 투명하게 번진 것 같은 물방울(雫) 같구나. 하지만 오늘은 투명하게 번진 것 같은 게 하나가 더 있네.) (시즈쿠가 입고있는, 체육복에서 물에 조금 젖은 부분을 살짝 만진다.) 체육에, 여름이니깐 당연히 덥지. 체육복도 많이 더웠나봐, 물에 젖으니깐 시원해보이네.
 
키리가미네 시즈쿠:(우와... 젖은 부분을 만지자 가까워진 거리에 얼굴을 살짝 붉힙니다. 그리고는 담담하게 말합니다. 여전히, 그 때와 똑같은 목소리로.) 더워서 운동장 옆에 세수하다가... 급우들이 물 가지고 놀아서 그랬어. ...시원하니까 괜찮지만. (베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합니다.)
 
정말인지 운동장 옆에 마련되어있는 수돗물에서 세수를 하고 온 참으로 시즈쿠의 얼굴과 머리카락은 물로 젖어있습니다.
 
카니스 베베:... (작게 내뱉는 웃음소리.) 급우라는 단어를 쓰는구나. 시원하다니 다행이네. 복도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 한층 더 시원할거야. (교복 제킷 안주머니에서, 곱게 접혀진 작은 검정색 손수건을 꺼낸다. 그리고는, 살짝 젖어있는 시즈쿠의 얼굴을 닦아주고 머리카락을 토닥이며.) 젖어있길래. 시원하지만 몸은 추울지도 모르니깐. (담담하게, 말해봅니다. 현재의 시즈쿠는 모르는, 지금으로부터 10년 후, 그 때와 똑같은 목소리로.)
 
키리가미네 시즈쿠:...고마워. (짧게 말하고 직접 닦아줄려는 베베를 보고 의아한듯 말합니다.) 내가 닦으면 되는데 왜?
 
평소와 다름없는 안정적인 시즈쿠. 역시, 시즈쿠는 10년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카니스 베베:해주고싶어서. (함께 성인이 되고, 함께 결혼을 하고, 함께 반지를 나눠 끼운 그 시절에는 머리카락을 닦아주는 일은 해봤지만, 지금 이 여름 날, 지금 내 앞에 있는 너에게는.) 못해봤거든.
 
키리가미네 시즈쿠:...다른 급우들이 보면 이상하다고 생각할거야. ...손수 닦아줄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살짝 웃습니다.) ...특이하네. 못해봤다니. 당신과 나는 그냥 같이 공부하는 그룹이니까 이정도는 과한 걸. (그러나 손을 들어 그 손수건을 든 손을 만지고 싶어도 어쩐지 중간에 끊기고 다시 제 손을 내려놓습니다.)
 
카니스 베베:그러면, 과하지 않게 그만할게. (시즈쿠가 하고싶은 행동이 뭔지 눈치라도 챈 듯, 본인이 닦아주었던 손수건을 든 상태로 시즈쿠의 손을 잡는다. 그리고는, 시즈쿠의 손바닥에 자신의 손수건을 건내주면서, 아주 살짝 손깍지도 껴보며.)
 
키리가미네 시즈쿠:(손깍지를 껴진 손이 잠시 떨리더니 얼떨떨한 눈으로 바라봅니다. 왜이러는거지? 시즈쿠 안에서는 스터디 멘토 멘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관계로 알고있는 모양입니다.) 손수건 고마워. (그래도 담담하게 말하며 나머지 제 뺨언저리를 닦습니다.)
 
복도에서 시즈쿠와 대화를 나누는 베베의 귀에 아이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립니다.
 
듣기 판정 해볼까요?
 
카니스 베베:(시즈쿠 마음의 소리가 들렸으면 하는데, 애석하게도 다른 소리가 들리는구나.)
듣기
기준치: 95/47/19
굴림: 82
판정결과: 보통 성공
 
키리가미네 시즈쿠:(철통방어 마음의 소리.)
 
학생A: 이틀 뒤면 여름 방학이네. 계획이라도 있어? 독서실에서 공부만 하기엔 좀 아쉬운데.
 
학생B: 나는 가족들이랑 별장에서 놀다가 갈거야. 다른 친구들도 초대할려고.
 
아이들은 벌써부터 방학 때 할 일을 정하나 봅니다.
 
하긴. 이번 여름이 유독 덥기도 하고 여름이 끝나면 이제 고등학생으로 남아 있을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요.
 
베베는 한 번 생각해볼까요? 10년 전 베베와 시즈쿠는 여름날 무엇을 하며 보냈는지.
 
카니스 베베:(여름날, 고백하여 너와 내가 연인이 된 날.)
 
그 이후, 여름방학에 둘은 어떻게 보냈나요?
 
카니스 베베:(그때의 여름과, 지금의 여름이 같지만, 언제나 변수는 존재하니깐. 어떤 여름일지, 어떤 기분일지, 어떤 마음일지, 모르지. 하지만, 확실하다면, 너와 내가 함께 있다는 것. 사소하게, 같이 스터디를 하고, 같이 쇼핑을 하고, 같이 영화를 보고, 같이 카페에 가 대화를 나누고, 같이 여름 바다를 구경하며, 파도를 따라 걸어가는. 그런 여름.)
 
여름 하늘을 보면 항상 곁에는 시즈쿠가 있었습니다.
 
빈 교실에도, 쇼핑몰에서도, 영화관에서도, 카페에서도, 바다에서도. 드넓은 여름 하늘과 햇살이 만들어낸 그림자에 가려진 두 사람.
 
옆에 있는 시즈쿠는, 희미하지만 웃고 있었습니다.
 
키리가미네 시즈쿠:여름 방학이라... (자기도 학생들 대화를 듣고 있었는지 베베를 보고 말합니다.) 방학 때 바쁘겠지?
 
카니스 베베:너가 안 바쁘다면, 나랑 같이 보낼 마음이 있다면. (대화가 들린 쪽으로 눈길을 주다, 시즈쿠와 눈을 맞추어서.) 나랑 같이 보낼 수 있다면, 너랑 함께 하고싶은걸 다 하면 바쁜 방학이 되겠지.
 
키리가미네 시즈쿠:(어... 눈을 굴려서 시선을 피합니다.) 여름 때 약속은 못 잡을거 같아. 스터디도. 할 일이 있어서. 방학동안 멀리 가야되는 일이 있어서.
 
이상하네요. 열아홉 시즈쿠가... 방학 때, 어딘가로 멀리 간 적이 있었던가요?
 
분명 과거 베베와 시즈쿠는 함께 마지막 열아홉의 여름방학을 보냈는데. 시즈쿠가 악의를 가지고 베베의 말을 거절한 것은 아닌 듯 합니다.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있으니까요. 베베가 기억하던 과거와 조금 달라졌습니다.
 
시즈쿠를 의심한다면 심리학 판정도 가능합니다.
 
카니스 베베:아쉽네. (진심으로 아쉬운 티를 내고싶었지만, 진심으로 미안해 하는 시즈쿠의 얼굴을 보고 풀리고 만다.) 방학동안 멀리 가야한다면, 멀리 가기전인 방학식날엔 나랑 같이 보낼 수 있을까? (과거가 달라졌어. 역시, 같은 그 시절 여름이지만 결국은 다르니깐. 시즈쿠를 의심하진 않지만, 심리는 궁금하니깐.)
심리학
기준치: 80/40/16
굴림: 41
판정결과: 보통 성공
 
키리가미네 시즈쿠:... ...된다면 말이지. (고개를 끄덕입니다.)
 
시즈쿠는 진심을 다해 베베에게 미안해하고 있습니다.
 
방학 때 일이 있다는 것도 거짓말이 아닌 듯 합니다. 조금 고민하는 기색이 보이긴 하지만 베베를 대하는 행동은 똑같습니다.
 
뎅- 뎅- 뎅-
 
시즈쿠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다시 수업을 알리는 종이 칩니다.
 
복도에 서 있던 아이들이 모두 교실로 들어가고 복도에는 시즈쿠와 베베만이 남았습니다.
 
곧 선생님이 오실겁니다. 시즈쿠가 베베에게 인사합니다.
 
어딘가 어색한, 예리한 베베가 알 수 있는 찝찝한 기분. 그래도 다음 수업을 위해 시즈쿠에게 인사를 해야죠.
 
카니스 베베:기다릴게. 함께 스터디를 했던 그 교실, 그 자리에서. (대화를 나누면서 서서히 마르며, 이제는 완전히 다 말라진 머리카락의 끝을 조금 만지다 이내 시즈쿠의 머릴 쓰다듬으면서.) 남은 수업도 잘 하고.
 
키리가미네 시즈쿠:(만져지는 손길에 경직되지만... 잠시 가만히 있다가 먼저 고개를 들어 멀어지게 합니다.) 응. ...아 잠시만.
 
베베가 교실로 들어가려고 할 때, 조금 머뭇거리던 시즈쿠가 베베를 불러세웁니다.
 
키리가미네 시즈쿠:...학교 끝나고 집에 같이 갈래? ...바래다 주고 싶어서.
 
카니스 베베:결과적으로 내가 너를 바래다줄거 같은데, 그래도 괜찮다면 같이 가자. 바래다줘.
 
베베의 대답을 들은 시즈쿠는 무미건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복도를 걸어 사라집니다.
 
우리의 관계가 전진된 여름은 중요한 계절인데. 시즈쿠는 그렇게 느끼지 않는 듯 하네요.
 
과거에 무슨 문제가 생긴걸까요?
 
세상이 멸망하기까지 10년밖에 남지 않았는데 함께 있을 시간은 턱 없이 부족합니다.
 
헤어지고 다시 교실에 들어가면,
 
선생님: 수업 시작할거니까. 다들 자리에 앉아.
 
선생님이 시간에 맞춰 수업을 시작합니다.
 
조용한 목소리가 교실에 울려 퍼지고 연필이 사각이는 소리. 책장이 넘어가는 소음. 의자가 끌리는 잔잔한 소리들의 연속입니다.
 
매미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웁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 수식처럼 떠다니는 구름들. 여름은 이렇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
 
수업이 끝났습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요.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고 청소 당번인 아이들은 교실에 남아 책상 아래와 교실을 쓸기 시작합니다.
 
베베는 무엇을 하나요?
 
카니스 베베:..밉다. 내 마음도, 함께 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것도. 밉지만, 바래다주고싶어. 나는, 나라는 사람은, 이래. (작게 속삭이며, 책상 위에 올려진 교과서들은 서랍에 넣으며, 아까 시즈쿠가 답 해준 것을 하기 위해 교실을 나서, 시즈쿠가 있는 방향으로 향한다.)
 
집에 가기 위해 복도를 달리는 모습들. 한껏 시끌벅적한 소란이 지나고 교실문을 나섭니다.
 
발걸음을 걸어 도착한 곳은 작은 교실 앞. 여기서 스터디를 했죠. 오직 두 사람의 비밀기지와 같은 공간. 그 교실 문 앞에서 시즈쿠가 보입니다.
 
키리가미네 시즈쿠:...방학이 곧이라서 한동안 스터디나 교실문은 닫는가봐.
 
시간이 좀 늦었습니다. 푸르렀던 하늘은 점차 색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시즈쿠가 서 있는 복도 창문 뒤로 낮아진 태양이 보입니다. 가방끈을 손에 쥐고 있던 시즈쿠가 베베를 발견하자 흐릿하게 미소지으며 말합니다.
 
키리가미네 시즈쿠:이제 끝났어? 나는 좀 일찍 마쳐서 말한대로, 스터디 교실에 왔어. ...닫혀있지만.
 
카니스 베베:방학식날에는 열려있을거야. (내가 열게 할거거든.) 이제 갈까? 바래다준다며, 물론 마지막으로 집에 들어가는 사람은 내가 될테지만.
 
키리가미네 시즈쿠:(흐응...) 내 집이 당신 집보다 먼 거 알잖아. 내가 데려다 줄게. 그러고 싶으니까. (약간 고집스럽게 말합니다.)
 
베베 옆으로 걸어오는 시즈쿠는 말했던대로 함께 집에 가자고 합니다. 데려다 주겠다고 말하면서요.
 
카니스 베베:그러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할까 생각했는데, 당신이라고 말 해서 안돼.
말재주
기준치: 90/45/18
굴림: 3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키리가미네 시즈쿠:그럼 어떻게 말해야돼? (난처하게 볼을 긁적입니다. 이내 아아, 알겠다는 식으로 말합니다.) ...카니스?
 
카니스 베베:카니스라고 말 해서 정말로 안되겠네. 마지막으로 집에 들어 갈 사람이 내가 될 거 같은데. 그치, 키리가미네? (일부러 눈치를 주며, 너를 바라본다.)
 
키리가미네 시즈쿠:...그럼 어떻게 말해야 될까? (한쪽 눈을 감으며 애써 말합니다.)
 
카니스 베베:내 이름 불려줘, 시즈쿠.
 
키리가미네 시즈쿠:(진짜 훅치고 들어와서 뇌정지 됨)
...이름, 이름말이지. (다소 난감한 표정으로 바라봅니다. 그에비해... 베베가 자기 이름을 부른 거엔 안좋은 반응이 없습니다. 마치 처음부터 그래도 된다는듯이.)
...이름, 카니스... 베베. (한 번 작게 중얼거리곤 말합니다.) 베베, 이렇게 말해도 될까?
 
카니스 베베:응. (그리고는 갑자기 시즈쿠의 이름을 부른게 걸렸는지.) 시즈쿠, 라고 불려도 될까?
 
키리가미네 시즈쿠:...당연하지. (살짝 웃습니다.) 그럼 베베, 내가 집에 데려다줘도 될까? 같이 가고싶어서.
 
카니스 베베:응. 집에 데려다 줄 수 있을까? 시즈쿠. (웃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 입을 열며.)
 
키리가미네 시즈쿠:(웃음이 번지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방학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조금이라도 더 많이 함께 집에 가고 싶다고 말합니다. 둘은 가끔씩 함께 집으로 향하곤 했습니다. 이번에는 데려다주는 사람이 바뀌었지만, 이건 바뀌지 않았군요.
 
교문으로 나가면 시즈쿠는 세워둔 자전거를 가져옵니다.
 
귀엽지도 않고 그렇다고 유명 가게의 자전거가 아닌 마치 실용적인 자전거. 누가봐도 시즈쿠의 것입니다.
 
10년 전, 막상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집까지 거리가 되자 샀다는 자전거. 언제 들었을까요? 같이 공부했을 때? 나중에 연인이 되고 난 뒤에?
 
시즈쿠가 자전거 손잡이를 잡으며 베베에게 탈건지 눈빛으로 말합니다. 어떻게 할 건가요? 타나요?
-
 
카니스 베베:...그거 타면, 우리의 헤어짐이 너무나도 빠르게 다가오잖아. (타고싶지만, 너와 함께 하는 시간이 조금 더 길었으면 하길 바라며.) 자전거 타는 모습, 궁금한데. 조금 더 오랜 시간을 함께 하고싶어. 시즈쿠, 너와. (시즈쿠의 얼굴을 바라보며.) 괜찮을까?
 
키리가미네 시즈쿠:(자전거 손잡이를 잡으며 당신을 봅니다. 손잡이를 톡톡 두드리던 손이 멈춥니다. 그리고 그대로 손잡이를 잡고 말합니다.) 걸어가자고...? 좋아. (순순히 끄덕입니다. 이쪽도 오랜 시간 함께...라는 말에 반응한건지 자전거를 천천히 끌어갑니다.)
 
두 사람은 베베의 집쪽으로 가나요?
 
카니스 베베:오늘 이렇게 날 바래다주니깐, 다음에는 내가 시즈쿠 바래다줄게. (그게 방학식날이면 좋겠다, 라는 말은 삼킨 상태로. 혹여나 너에게 부담을 남겨주긴 싫어서.) 시즈쿠, 나를 바래다 줘. (10년 후, 너와 내가 결혼을 하고 서로 왼손 약지에 반지가 있고 함께 시간을 보냈던,) 집으로.
 
키리가미네 시즈쿠:...그래. (무어라 말할려다가 다시 조용해지는 시즈쿠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럼 가자. 카니...(흠) 베베의 집으로 가는 길은 풍경도 예뻤으니까.
 
두 사람이 옆에서 나란히 걸어 교문에서 멀어집니다. 학교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이 이제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두 사람은 한산한 거리를 걷습니다. 시즈쿠와 베베의 그림자는 끊기지도 않습니다.
 
자전거를 끌어 탁. 탁. 바퀴 굴러가는 소리만 들리는 이 조용함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 노을이 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붉고, 노랗습니다. 우리의 여름은 푸르러야 할 텐데.
 
키리가미네 시즈쿠:...세상이 멸망하면 이런 풍경이 아닐까-...
 
천천히 걸어가던 시즈쿠가 말을 꺼냅니다.
 
카니스 베베:시즈쿠가 운동장에서 손을 흔들었던 그 순간, 문학 시간이였어. 선생님께서 질문을 하더라, '너는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무엇을 할거니?' 라고. 시즈쿠는 어때? 이 풍경이 내일 세상이 멸망하는 걸 암시하는거라면, 내일 세상이 멸망한다면, 무엇을 할거야?
 
키리가미네 시즈쿠:멸망... 멸망... 문학 시간에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면 그거겠지?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을 것이다.'
 
카니스 베베:그치. 그렇지만 그 선생님은 포도나무를 심을거라고 하시더라.
 
키리가미네 시즈쿠:(무표정이지만 쿡. 하는, 웃음이 새어나오는 소리가 닫힌 입에서 나옵니다.) 문학 선생님은 그러시니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남기는 게 가치가 더 있겠어. (문학 선생님의 편을 듭니다.)
 
카니스 베베:그렇지. (새오나온 웃음소리와 문학 선생님의 편을 드는 시즈쿠와 눈을 맞추며.) 그래서? 대답해주셔야죠, 시즈쿠 학생.
 
키리가미네 시즈쿠:아. (시즈쿠 학생이라는 말을 듣자 다소 난해한 서술형 문제를 본 학생처럼 눈썹이 살짝 모여집니다.) 나? 나는... (눈을 천천히 감으며 말합니다.) 이상한 말 해도 돼? (대뜸 그렇게 말합니다.)
 
카니스 베베:당연하지. 아, 눈동자는 나를 바라보았으면 좋겠는데.
 
키리가미네 시즈쿠:(베베의 말을 듣곤 묘한 표정으로 바라볼 뿐입니다.)
나는... 도망치고 싶었어. 하지만... (다시 눈을 느리게 깜빡입니다.) 멸망 앞에 나에게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이 있다면 다시 되돌아 갈지도 모르겠지. ...너무 시적인가? 이런 대화는 익숙하질 않아서.
 
카니스 베베:시적이면 어때. 그게 너의 진심이고 너만의 정답이잖아. 내가 너와 똑같은 말을 하고, 시적인가 걱정하면 너도 나에게 괜찮다고 할거잖아. 나도 너랑 똑같이 행동할게, 괜찮아. (도망치고싶단 말을 다시 생각하며.) 그러면, 지금 세상이 멸망 한다면 보일 풍경이니깐, 지금 시즈쿠는 나랑 도망치고 있는거네.
 
키리가미네 시즈쿠:그런건가. (살짝 웃습니다. 편안해진 얼굴로요.) 베베는 무어라고 말했어?
 
카니스 베베:수업과 상관 없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습니다, 선생님.
...하지만,
필사적으로 도망치다 마지막에 혼자 남아 외로워 하지 않도록 함께 도망칠겁니다.
라고 했던 거 같은데?
 
키리가미네 시즈쿠:...거짓말. (가볍게 웃습니다.) 내가 이런 말을 과거의 베베가 알리는 없잖아? (그래도 기분이 좋은지 가벼운 발걸음으로 걷다가 노을을 등지고 바라봅니다.)
 
카니스 베베:너가 할 대답을 미리 생각하고, 미리 답 할 수도 있지. (노을을 등지고 바라보는, 시즈쿠가 너무나도 예쁘다.)
 
키리가미네 시즈쿠:(그 말이 마음에 드는지, 재밌는 모양인지 환하게 웃습니다.)
 
멸망… 노을... 그러고보니 베베가 멸망의 끝에서 죽음을 맞이 할 때의 풍경과 비슷합니다.
 
그때의 기억이 나나요? 오직 절망밖에 없었던. 지구에 끝은 이미 정해져있었고 살아있는 것이 죽어있는 것보다 가치가 없었던 때...
 
베베는 저물어가는 노을을 보면서 미세한 두통을 느낍니다. 세상이 불에 타고, 혹은 물에 젖어버리고. 폐허가 되고...
 
...기분 나쁜 순간입니다. 베베는 그러한 세상에도 살아갈 수 있었겠지만 온 지구가 망가지듯 결론적으론 눈을 감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건 뭘까요? 분명 마지막에는 시즈쿠가 함께 있었고, 세상은 저물었는데 여러 종말의 순간이 지나갑니다.
 
이상합니다. 이건... 본 적도 없습니다.
 
기억나지 않는 다양한 종말들의 모습이 순식간에 눈 앞에서 휙휙 지나갑니다.
 
산치 체크. 1/1d3
 
카니스 베베:
SAN Roll
기준치: 80/40/16
굴림: 45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 란에 79로 숫자 수정해주세요.
 
...정신을 차린 것은 발걸음이 멈췄기 때문이겠죠.
 
너무 빠르게 도착했다고 느낄만큼 베베는 벌써 자신의 집 앞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키리가미네 시즈쿠:...? 괜찮아? (베베의 모습을 보고 괜찮냐고 물어봐요.)
 
카니스 베베:... (10년 후, 그 순간에도 너와 함께였기에 괜찮았지. 지금도, 너와 함께 있어서.) 괜찮아.
 
키리가미네 시즈쿠:(고개를 끄덕입니다. 괜찮다면 괜찮단 뜻이겠지. 그렇게 받아들이는 모양입니다.)
 
그래도 시즈쿠가 걱정하는 걸 보아 아무래도 얼굴빛이 별로인가봐요.
 
10년 후에 이 평화로운 지구의 끝을 시즈쿠는 모르는걸까요? 그 끝에서 베베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조차...
 
키리가미네 시즈쿠:도착했네. ...이제 갈게.
 
카니스 베베:(하고싶은 말이 있어. 너에게 꼭 하고싶은 말이, 꼭 해야하는 말이. 지금 이 순간이 아니여도 괜찮아. 하지만, 적어도,) 방학식날, (너와 헤어지기 전에 꼭 하고싶은 말이 있어. 나의 마음을, 너가 들을 수 있는 그 순간이 올 때까지,) 기다릴게.
 
키리가미네 시즈쿠:방학식... 아직 방학식까지는 이틀 남았으니까. 방학 기대돼? (그래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쥐고 앞으로 천천히 뻗어요.)
 
무언갈 쥐어줄려는듯 베베 손을 잡고 펼치지만 쥐어지는 건 없고 시즈쿠는 베베의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무언갈 씁니다.
 
글자가 보이지 않지만 감촉으로 읽어내리자면,
 
' 내일 만나자 ‘
 
그렇게 쓰곤 바로 고개를 돌려 자전거에 올라타고 온 방향 반대편으로 사라지는 시즈쿠.
 
전깃줄이 만들어낸 엉킨 그림자가 유독 눈에 띕니다.
 
...내일은 우리들의 여름에 대해서 말해보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시즈쿠의 멀어져가는 모습을 보며 베베는 다시 두통을 느낍니다.
 
정신 판정해주세요.
 
카니스 베베:
정신
기준치: 80/40/16
굴림: 2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일사병이라도 걸린걸까요? 자꾸만 머리가 아파오다가 멈춥니다.
 
이제는 거의 다 저물어버린 노을을 바라보면 생각나는 10년 후의 미래. 그 미래에서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은 ...아마도 없는거겠죠.
 
베베는 집으로 가서 무엇을 하나요? 특별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다음날로 넘어갑니다.
 
카니스 베베:...내일 만나자.
이렇게 쓰고 바로 고개를 돌리고 자전거를 타고 떠나버리면, 그림자만 내 눈에 밟혀지게 하면, 내가 집에 들어가서 무슨 생각인 줄 알고. 밉다, 정말.
...그렇지만, 여전히 좋아해. 10년 후까지도, 그 미래에서도. 여전히, 시즈쿠를 ㅡ.
 
병적일 정도록 깔끔하고 정돈된 기억 속의 자신의 집. 자신의 침대 위에서 베베는 눈을 감고 내일을 기다립니다.
 
그건 시즈쿠가 '내일 만나자'라고 했기 때문일까요?
 
-
 
다음 날.
 
좋은 아침을 맞이합니다. 멸망까지 10년, 적어도 그 시간 전까지는 편안하게 있을 수 있겠죠.
 
다시 학교입니다. 학교는 어제보다 더 소란스럽습니다.
 
바로 내일이 여름 방학이니까요.
 
아이들은 방학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보입니다. 오늘은 방학식 바로 전 날이라 수업도 느슨하게 합니다.
 
진학에 열을 올리는 명문 학교에도 방학이 다가옴에 따라 쏟아지는 열성을 선생님들이 감당하기란 어려우니까요.
 
선생님들은 자습을 주고는 교실 밖으로 나가셨고, 아이들은 주어진 자습에 보충 공부를 하거나 작게 이야기를 나누기 바빴습니다.
 
베베의 주변에도 아이들이 바라봅니다. 반 학생들은 베베가 방학 때 무엇을 할지 신경쓰이는 모양이겠죠.
 
말을 건네고 싶어도, 베베의 분위기 때문에 쉽사리 말을 못꺼내는 눈치인가봅니다.
 
카니스 베베:(자습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한쪽 손에 쥐어진 파란 볼펜을 돌려보며.)
 
파란 볼펜을 쥐어 자습하는 분위기를 내고 있는 베베를 보고 관심이 갔지만 곧 아이들은 작은 수다를 시작합니다.
 
작은 소리지만 근처에 있어서 그런지, 귀가 좋은건지, 수다 소리가 들립니다.
 
학생A: 방학 때 뭐할지 정했어?
 
학생B: 듣기로는 열아홉 여름 방학이 제일 중요하대. 향후 10년을 결정한다나, 뭐라나.
 
학생C: 그럼 나는 공부할래.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선 공부가 좋지.
 
학생B: 에이, 공부만 하면 10년 뒤에도 공부만 할걸? 나는 놀거야. 원없이 놀거야. 어른이 되어도.
 
학생A: 10년 후라... 그 땐 분명 꿈을 이뤄서 멋진 삶을 살고 있겠지?
 
아이들의 이야기는 미래로 향합니다.
 
3년 뒤. 5년 뒤. 10년 뒤 ...10년 뒤의 미래가 어떨지 알고 하는 소리는 아닐테죠.
 
하지만 세상이 멸망하는 우울한 미래를 언급해서 굳이 분위기를 망칠 필요는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10년 전의 베베 역시, 10년 후가 그렇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테니까요.
 
듣기 판정 해봅시다.
 
카니스 베베:
듣기
기준치: 95/47/19
굴림: 13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똑. 똑. 복도 쪽의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보자, 그곳에는 어제와 같은 곳에 서서 베베를 향해 손을 흔드는 시즈쿠가 서 있습니다.
 
자습하는 반을 밖에서 쭉 둘러보던 시즈쿠는 입을 달싹입니다. 마치 나와달라는데 말을 잘 못하겠는 마냥 말이죠.
 
카니스 베베:..귀엽네. (그런 모습에 돌리던 펜도 책상 위에 올려두곤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수다를 떠는 다른 학생들을 뒤로 하고 교실 문을 나서 나에게 손을 흔들었던 시즈쿠 옆에 서며.)
 
시즈쿠의 옆에 서기 위해 교실 밖으로 나가기 전, 베베의 옆으로 게시판이 지나칩니다.
 
핀으로 꽂은 유인물이 베베의 몸짓으로 생긴 바람에 맞춰 살랑 살랑 움직입니다.
 
<유인물>을 한 번 더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어제 봤던 이상한 유인물을 다시 한 번 더 볼건가요?
 
카니스 베베:... (궁금한데, 한번 볼까.)
 
베베가 유인물을 확인한다면...
 
8년.
 
10년 후의 미래가 8년으로 바뀌었습니다.
 
산치체크, 0/1.
 
카니스 베베:
SAN Roll
기준치: 79/39/15
굴림: 11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8년이라니. 대체 이유가 뭘까요? 분명 10년 후여야 하는데...
 
이유를 알 수 없던 지구의 마지막이 2년이나 앞으로 당겨졌습니다.
 
베베가 유인물 앞에 서서 밖으로 나오지 않는 걸 본 시즈쿠가 창문을 통해 베베를 바라보기만 합니다.
 
키리가미네 시즈쿠:(기다리는 중...)
 
카니스 베베:.... 2년, 줄어들었네. ㅡ (교실 문을 나가기 전에, 유인물을 한번 확인하고는 꽤나 덤덤하게 교실 문을 나서며. 그러곤, 나에게 손을 흔들었던 시즈쿠 옆에 서며.)
 
밖으로 나가자 더운 바람이 훅 끼쳐옵니다.
 
교실 안에만 있어서 잘 몰랐는데, 여름의 더위가 한층 더 가까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얼음이 들어있는 물병을 시즈쿠가 베베에게 건네면서 "...더워?" 하곤 묻습니다.
 
사실 이 더위의 근원지는 가까운 둘의 체온, 바로 앞에 있는 시즈쿠인데 말이죠.
 
키리가미네 시즈쿠:(물병을 건네줘요. 가만히 있는 걸 보아 어제도 그렇고... 더위 먹었나 싶어서요(그럴리 없겠지만.))
 
카니스 베베:고마워, 시즈쿠. (너가 주는 물병을 받아서, 뚜껑을 열어 입구가 입에 닿지 않도록 조금 떨어트린 상태에서 물을 흘리지도 않고 깔끔하게, 한 모금 마시더니 다시 뚜껑을 닫아 너에게 건네주며.) 시즈쿠. 더위 먹지 않게, 물 많이 마셔. 카페인이 들어가거나 너무 단 음료, 주류.. 는 못 마시겠지만. 그런거 마시지 말고. 햇빛 받지 않도록 조심하고.
 
키리가미네 시즈쿠:주류... (살짝 웃습니다. 유인물에 그랬죠. 학생이 무슨 술이냐 싶은 모양입니다.) 차는 자주 마시는데 그것도 자제할게. 이번 여름은 특히 더운 거 같아서. (끄덕여요.)
(그리고 자기가 여기 온 이유에 대해 말합니다.) ...수업 안하지? 교무실 심부름 가는 길에 생각나서 들렀어. ...상당에 의자를 놓아두러 갈건데, 같이 가면 좋겠다 생각해서 왔어...
 
카니스 베베:마시고 싶으면, 나랑 마시고. (주류든, 차든. 어떤거인지는 말 하지 않고.) 수업 안해. 내 생각해주고, 그대로 행동해줘서 기쁘네. 같이 가자, 나도 너랑 같이 있고 싶다는 생각 하고 있었어.
 
방학식은 뜨거운 햇빛을 피해 강당에서 하기로 했습니다. 내일을 위해 의자를 놓아두는 것 같습니다.
 
혼자서 하기엔 옮길 의자가 많다며 시즈쿠가 베베에게 부탁을 합니다. 다행히 수락하는 베베의 말을 듣곤 기쁜 표정을 짓습니다.
 
베베도 못할 이유도 없습니다. 수업은 없고. 반은 소란스럽고. 눈 앞에는 시즈쿠가 있으니까 그렇겠죠?
 
둘은 강당으로 향합니다. 푸른색 복도를 넘고 계단을 내려갑니다.
 
본건물과 이어진 강당으로 가는 길은 멀지 않지만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
 
끼이익-
 
열려있는 강당 문을 열고 들어가면 커다란 공간이 둘을 맞이합니다.
 
이미 몇 명이 앞줄과 뒷줄의 의자를 놓아두고 간 모양입니다. 강당 뒤에는 펼쳐 두어야 할 의자들이 접혀진 채 놓여져 있습니다.
 
시즈쿠가 의자들을 세우며 두 번째 줄로 향합니다. 남은 곳은 다섯 번째 줄. 여덟 번째 줄.
 
키리가미네 시즈쿠:(두번째 줄에서 의자를 정돈하며 말해요.) ...방학 때 보고싶을거야. ...방학 끝나고도 만날 수 있겠지. 아주 멀리 가는 것도 아니고 공부는 더 해야되는걸.
 
시즈쿠의 잔잔한 말소리와 가벼운 발소리가 빈 강당 안에서 울려 퍼집니다.
 
음, 맞아요. 조금 달라진 여름에 당황스러웠을 뿐, 여름만이 계절이 아닙니다.
 
시즈쿠와 베베의 관계는 다른 계절에서도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을 겁니다. 지금이 아닐 뿐이죠. 둘의 애정은, 쉽게 바스라지지 않을테니까요.
 
키리가미네 시즈쿠:오늘은 어땠어? 베베는 자습하라고 해도 공부에 집중하는 편일테니까. (평소의 대화를 하며 의자를 옮깁니다. 하지만 베베 앞에서는 그 평소의 수다에서 말수와 주제가 많은 건 이미 베베도 알고 있겠죠.)
 
카니스 베베:오늘... 너와 첫 스터디를 했던 날이 생각났어. 너 생각하고 있는데, 생각 속에 있던 너가 교실 창문 밖에 있어서 놀랐어. (드넓은 강당에서, 서로 떨어져 의자를 정돈하고 세우며. 거리는 멀지만 마음만은 가까운 듯한 기분.)
 
키리가미네 시즈쿠:보고있었어. 그 볼펜. (다시 의자를 정리하며 말합니다.) 붉은 색 사이에 있던 푸른 색이었으니까... 스터디... 방학 동안 스터디를 못해서 아쉬워. 나와의 첫 스터디... 어땠어? 그러고보면, 나는 그 때 꽤 긴장했었을거야. 그 카니스 베베니까. (살풋 웃어요.)
 
카니스 베베:내가 그렇게 유명한 편인가봐, 이 학교에서. (사실 이 학교가 아니라, 전국적으로 유명하고, 전국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유명하지만. 그 사실은, 내가 시즈쿠를 좋아하는 사실보다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스터디, 좋았어. 방학때는 아쉽게도 못하겠지만. 아쉬운 감정을 덮을 수 있는 수 많은 추억을 만들어줘서, 고마워.
 
키리가미네 시즈쿠:추억... 추억이라... (다시 되새기듯 중얼거립니다.)
 
강당에 놓인 의자들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는 바닥에 얽혀 거미줄같이 퍼져 있고 그 위로 둘의 모습이 방향을 달리한 채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두 번째 줄에서 첫 번째 줄로 가는 걸음. 다섯 번째 줄에서 세 번째 줄로 가는 걸음. 왼쪽으로, 혹은 오른쪽으로. 앞으로. 뒤로.
 
우리들이 밟았던 바닥을 표시할 수 있다면 분명 꽤 아수라장이 되겠죠.
 
두번째 줄 마지막 의자를 놓으면서 시즈쿠는 중얼거리며 말을 곱씹다가 문득 말을 꺼냅니다.
 
키리가미네 시즈쿠:...그 때. 죽게해서 미안해.
 
시즈쿠의 목소리는 이 넓은 강당을 울리기엔 너무나 작았지만 가까운 줄에 서 있는 베베에게는 매우 또렷합니다.
 
그 때라니. 언제를 이야기하는거죠?
 
베베는 생각하지만 이미 답을 알고 있습니다. 베베가 죽음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억은 한 번입니다.
 
10년 후의 미래.
 
철제 의자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납니다.
 
강당 창문을 가려 놓았던 얇은 커튼이 흔들릴 때마다 작은 입자 먼지들이 햇빛에 모습을 드러내다가 다시 사라지기를 반복합니다.
 
키리가미네 시즈쿠:...많이 아팠겠지? 당연하지만... (눈을 천천히 깜빡이며 말을 잇습니다.)
카니스 베베. 기억하고 있을거야. 10년 후에 어떻게 될지를 말이야.
 
...산치 체크 말고 베베는 관찰력 판정.
 
카니스 베베:
관찰력
기준치: 95/47/19
굴림: 4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시즈쿠의 말 한마디에 강당 안에서 불어오던 바람의 방향이 바뀐 것만 같습니다.
 
어떻게 시즈쿠도 미래를 기억하고 있는걸까요? 강당 벽에 붙어있는 달력이 보입니다.
 
푸른 달력은 여름의 어느 날을 가리키고 있었고, 바람에 페이지가 넘어가면서 적힌 글자를 또렷하게 내보입니다.
 
적혀있는 글자는... [멸망이 시작되기까지 앞으로 6년]
 
6년.
 
베베가 글자를 보자 다시 시즈쿠 쪽에서 소리가 들립니다.
 
키리가미네 시즈쿠:...나도 알아. 우리가. 10년 후에서 왔다는 걸...
 
카니스 베베:(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가, 이내 멈춘 것 같다. 현재 이 시간도, 햇빛을 받아 내보였던 먼지들도. 이 순간이, 지금 이 순간이 멈춘 기분. 너가 하는 말에, 내 몸 뿐만 아니라 내가 현재 지내고 있는 이 세계가, 멈춘 기분. 미세하게 떨리는, 미세하게 떨려오는 입술을 열어 작게 내뱉은 말.) ...시즈쿠.
 
키리가미네 시즈쿠:..응. 베베.
(베베. 작은 입에서 나옵니다. 어쩐지, 겨우 어제만 허락했던 당신의 이름. 오늘 너무, 어색할 정도로 익숙한 것 마냥 부르고 있는 베베라는 단 두 글자 이름을 말하며 바라보고 있습니다.)
 
카니스 베베:나 혼자 도망친 줄 알았어. 그래서, 혼자 남겨진 너가 너무나도 그립고 걱정이 가고. 그래서, 도망치겠다는 너의 말에, 현재의 너는 혼자 남기지 않겠다고 다짐 했어. 나 혼자 도망치지도, 도망가지도 않게. 그런데, 그런데... 같이 도망 쳐온거였다니. (갑자기 본인이 했던 말이 떠올랐는지, 살짝 실없게 웃으며.) 같이 도망치겠다는 약속, 지켰네.
 
키리가미네 시즈쿠:어쩌면 지키지 못했을 수도 있어. (무어라 말할려는듯 입을 달싹입니다.) 혼자 남지 않겠다고, 같이 도망가겠다고 했지?
 
시즈쿠도 알고 있었습니다. 10년 후를,
 
10년 후에 겪게 될 미래를. 시즈쿠가 울 거 같은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합니다.
 
키리가미네 시즈쿠:...왜냐하면... 이건 기억해? 우리가. ...너무 많이 죽었다는 거.
 
너무 많이 죽었다니. 베베는 시즈쿠의 말을 도통 이해 할 수가 없을겁니다.
 
당연합니다. 베베의 기억에는 10년 후. 그러니까, 단 한 번의 죽음밖에 남아있지 않은걸요.
 
다시 머리가 아파옵니다. 어제와 똑같은 증상입니다. 맥박이 빨라지고 심박수가 높아집니다. 어지럽고 흐릿한 시야.
 
분명 건강한 몸인데도 울리는 낯선 감각에 시즈쿠의 말을 제대로 들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시즈쿠가 베베를 차분히 의자로 안내합니다. 높은 체온을 가진 베베의 피부 위로 시즈쿠의 차가운 손바닥이 닿았다가 떨어집니다.
 
베베의 이마를 짚어주는 시즈쿠는 앉아있는 베베와 시선을 맞춥니다.
 
듣기 판정
 
카니스 베베:
듣기
기준치: 95/47/19
굴림: 14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가까운 거리에 서로 마주보는 두 사람. 이 사이의 열기는 그 무엇보다 강했으며, 잔잔한 시즈쿠의 말이 울립니다.
 
키리가미네 시즈쿠:...몇 번이나 세상이 끝나고 다시 시작되었는지... 이제는 모르겠어. 사람들은 무너지는 지구를 다시 돌려놓기 위해 계속 과거로 시간을 돌렸지만... 언제까지 우리가 과거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제 왼손을 바라봅니다. ...다섯 손가락 모두 희고 가느다란 손, 다섯 손가락 모두 아무것도 끼워져 있지 않은 손을 말이죠.)
...베베. 당신이 미래를 기억하고 있다는 건. 10년 후에 있을 멸망에는 당신이 멸망을 받아들이는지, 과거로 갈지를 선택해야 된다는 뜻이겠지...
 
물어볼 것이 많습니다. 물어봐야 하는 것도요.
 
하지만 베베의 머리에는 기억되지 못했던 장면들이 끊임없이 상기되고 있습니다.
 
세 번째 멸망했던 지구. 네 번째. 일곱 번째. 열두 번째. 스물 한 번 째 …그리고 그때마다 봐왔던 시즈쿠와 자신의 '달라진' 모습들.
 
스물 초반의 모습. 스물 다섯 때의 모습. 갓 성인이 되었을 때의 모습.
 
그때마다 반드시 '지구는 멸망해서' 우리들은 계속해서 과거로 돌아왔습니다. 아마 지금의 모습도 그 '돌아온' 과거일테죠.
 
산치체크. 0/1.
 
카니스 베베:
SAN Roll
기준치: 79/39/15
굴림: 92
판정결과: 실패
 
◆:(진짜 캐릭터-오너 일치냐구)
 
베베는... 파도처럼 밀려오는 너무 많은 멸망의 순간과 그 곁에서 죽어가는 두 사람을 기억하곤 잠시 더 어지러워집니다.
 
이성 수치, 78로 기입해주세요.
 
다시 '돌아온' 과거, 그 때마다 시즈쿠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마냥 베베의 손바닥에 무언갈 쥐어주듯 했지만 인사말을 적어내렸습니다.
 
지금 이 지구가 무너져 내려도 우린 또 다른 과거에서 또 다시 볼테니까.
 
너무 많은 정보들로 시야가 어두워집니다. 열사병의 증세처럼.
 
스스로의 심장소리가 귓가에서 쿵. 쿵. 널뛰기를 하듯 들려오고 올라간 몸의 열 때문에 온 몸이 화끈거립니다.
 
왜일까요. 여름의 더위 때문일까요? 시즈쿠의 온기 때문일까요? 기억의 열기 때문일까요?
 
키리가미네 시즈쿠:...조금 자두자.
 
시즈쿠의 다정한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베베는 그대로 정신을 잃습니다.
 
-
 
누군가가 베베의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얇은 글씨를 쓰고 있습니다.
 
눈을 떠서 보고 싶지만 쏟아지는 잠은 유혹적이고 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어디... 뭐라고 쓰고 있는거죠?
 
집중하여 손에 쓰고 있는 글자를 어림잡아보면 나타나는 글자는…
 
' 내일 만나자 '
베베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침대에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곳은 학교 보건실입니다. 하얀 베개와 이불이 베베를 덮고 있습니다.
 
다섯 개의 보건용 침대가 놓여있지만 침대에 누워있는 베베를 제외하곤 아무도 없습니다.
 
베베가 누워있는 침대의 오른쪽에 커튼이 쳐져 있습니다. ...몸은 좀 괜찮나요?
 
카니스 베베:..... (눈을 뜨고, 가장 먼저 느껴지는 감각은 내가 침대 위에 누워있는 것. 그리고, ...나 혼자 있다는 것.) 내일 만나자.... (침대에 눕기 전보다는 나아진 몸상태.)
 
나아진 몸상태지만 정말 여러 일이 있었죠. 마음은 어지러웠을지도 모릅니다.
 
아무도 없는 보건실에, 드르륵. 문이 열리더니 베베쪽으로 오는 인물이 있습니다.
 
보건 선생님: 몸은 좀 어떤가요? 많이 피곤했나봐요.
 
인자한 인상의 보건 선생님께서 들어오시더니 베베를 맞이합니다.
 
보건 선생님: 키리가미네 학생이 부축하고 여기까지 왔답니다. 제가 잠시 나가기 전까지도 카니스 학생 옆에 앉아있었는데 교무실에서 부르길래 잠시 자리를 비운 참이죠.
담임 선생님껜 내가 말해둘테니, 오늘은 이만 집에 가서 쉬세요. 열사병 주의하시고요. 알겠죠?
 
보건 선생님은 그 말을 끝으로 시원한 물과 약을 건네줍니다.
 
그렇다면 손바닥에 내일 보자고 쓴 사람은 시즈쿠군요. 또 그렇게…
 
카니스 베베:...네, 선생님. (내일 만나자, 그 말을 쓰고 사라진 이유는 오늘은 더 이상 못 만나는건가.) (선생님께서 건네주는 물과 약을 받고.) 감사합니다.
 
베베는 보건실을 나서나요?
 
카니스 베베:(나 혼자 여기서 더 있을 필요는 없지. 집에 가서 쉬라고 해주셨지만 집에 가든 교실에서 시즈쿠를 찾든, 일단 보건실을 나가자.) (침대에서 일어나 보건실 문쪽으로 걸어가고, 문을 열어 나가기 전 한번 더 보건 선생님께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한 뒤에 문 밖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베베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는 보건선생님을 뒤로 하고 베베는 복도로 나옵니다.
 
복도로 나오자 또 다시 여름의 습도가 베베를 감싸 안습니다.
 
보건실 앞에 있는 투명한 유리창문 밖에선 운동장에서 뛰어 놀고 있는 아이들이 보입니다.
 
학교를 감싸고 있는 푸른 나뭇잎들. 위험한 직선과, 교차하는 선들을 가진채 존재하는 그림자들.
 
우리들의 10년 전 여름은 이렇게 푸른데 왜 10년 후의 여름까지 푸를 수는 없는걸까요?
 
밖을 보고 있는 베베는 복도를 지나가는 학생 한 명과 마주칩니다.
 
그 학생은 베베가 시즈쿠를 가르치고 있단 사실과 둘의 사이가 좋은 걸 알고 있는지, 대뜸 베베에게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을 건넵니다.
 
학생: 카시스, 괜찮아요? 하필이면 여름 방학 때 키리가마네가 전학을 가게 되서, 졸업이라도 하고 가면 좋았을텐데요.
 
카니스 베베:지금 이 곳에 카시스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 잘 못 보신거 같은데, 본인 갈 길 가시길 바랍니다.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시즈쿠가 아니여서 괜한 사람에게 시비를 걸고.) (전학.... 그런 의미구나, 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런 말은 이딴 모르는 사람 입에서 들을 게 아니라 본인이 직접 나에게 말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을 때 듣고싶으니깐. 지금은, 모르는 척 해야겠다.)
 
학생: 아. 죄송합니다. 카니스. 이름을 많이 불러본 적이 없는 학생이라서 이런 실언을 해버렸네요.
카니스 학생이시죠? 아무튼, 아쉽게 됐어요. 스터디도 선생님께서 다시 지정하고 계신대요. 카니스 학생 뿐만 아니라 키리가미네도 공부를 잘했는데 꽤 아쉬우신 모양이에요.
 
카니스 베베:저와 같은 학생 아니십니까? 성함이 혹시, 키리가미네이십니까? 아니면 학생으로 분장하여 원래는 이 학교 선생님이십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제가 당신에게서 당신이 지금 당장 하는 말을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학생: 둘이 같이 스터디도 하고 복도에서 얘기 하는 모습을 많이 봤으니까요. (살짝 웃어요.) 키리가미네가 어디까지 말했는지는 모르지만 스터디건은 저도 막 들었거든요. 지금 교무실에 있는 모양이에요.
 
카니스 베베:(죽일까.)
 
진정하세요.
 
그 학생은 시즈쿠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번 여름 방학 때 시즈쿠가 다른 곳으로 완전히 전학을 가버린다는 사실을요.
 
지금 교무실에서 선생님과 이야기하고 있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라고 합니다.
 
베베를 제외한 학교 아이들은 시즈쿠의 전학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건, 확실히 다릅니다. 베베가 기억하는 10년 전의 과거와는.
 
그렇다면 다시는 보지 못하는 걸까요? 다시는 만나지 않으려고 그러는 걸까요?
 
학생: 실례했어요. 선생님께서 나눠주신 유인물인데 반에 안계셔서 심부름을 시키셨거든요.
 
학생은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유인물을 건네줍니다.
 
베베는 나눠준 유인물에 시선이 자연스럽게 갔습니다.
 
글자가 눈에 들어옵니다. 산치체크 0/1.
 
카니스 베베:
SAN Roll
기준치: 78/39/15
굴림: 47
판정결과: 보통 성공
 
4년.
 
세상은 빠르게 멸망을 향해 다가가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왜 멸망이 이렇게 가까워지는 걸까요? 과거는 확실히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에는 분명 베베 당신과, 시즈쿠가 있겠죠.
 
시즈쿠를 만나야겠습니다. 만나서, 무슨 이유든. 어떤 말이든 들어야되지 않겠어요?
 
멸망이 더 가까워지기 전에. 우리의 여름이 이대로 끝나기 전에.
 
카니스 베베:...진짜, (유인물을 받자마자, 바로 교무실로 향한다. 시즈쿠가 있는 교무실로. 멸망이 더 가까워지기 전에, 우리의 여름이 이대로 끝나기 전에. 멸망이 가까워지는 것보단, 우리의 사이가 가까워지길 바라며.)
 
베베는 교무실 앞에 도착했습니다.
 
시즈쿠를 만나려고 교무실 안으로 들어가기 전, 베베는 교무실 안에서 들려오는 선생님과 시즈쿠의 대화가 흘러나옵니다.
 
대화를 자세히 들어볼려면 듣기 판정.
 
카니스 베베:
듣기
기준치: 95/47/19
굴림: 90
판정결과: 보통 성공
 
선생님: 너무 갑작스럽게 가게 된 거라 친구들한테 제대로 인사도 못하겠네. 아이들하고 인사는 다 했어?
 
키리가미네 시즈쿠:괜찮습니다. 다 인사했으니까요.
 
선생님: 그래. 내일 방학식엔….
 
다 인사했으니까요, 다... 전부... 그렇게 말하는 시즈쿠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선생님: 가는 김에 이것 좀 미술실에 놓아두고 갈래? 내일 방학식에 사용할건데 교무실에는 자리가 없어.
 
키리가미네 시즈쿠:알겠습니다.
 
선생님은 시즈쿠에게 심부름을 부탁하고 돌려보냅니다.
 
박스가 덜컹이는 소리가 난 뒤, "가보겠습니다." 시즈쿠의 인사가 지나자 교무실 문이 열립니다.
 
교무실 안에서 나온 시즈쿠와 앞에 서 있던 베베가 만납니다. 시즈쿠는 아무 말도 없이 베베를 바라보더니,
 
그림자의 방향이 달라질 때 "...몸은 괜찮아?" 라고 묻기만 할 뿐입니다.
 
시즈쿠의 표정은 …담담해보입니다. 슬퍼하지도 않고, 미안해하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카니스 베베:... (그거 말고는 다른 할 말은 없는가보네, 라는 말은 꾹 참아내고. 담담하게 묻는 질문에, 담담하게 대답해나가며.) 괜찮아.
 
키리가미네 시즈쿠:다행이네. (여전히 시즈쿠 또한 담담하게 말합니다.)
 
베베가 알던 10년 후의 시즈쿠는 이러지 않았는데. 10년 전, 여름에 서 있었던 시즈쿠의 모습은 분명 이렇지 않았습니다.
 
키리가미네 시즈쿠:...미술실 가야되는데, 같이 갈래? (제 손에 들고 있는 박스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해요.)
 
시즈쿠는 또, 자꾸만 같이 가자고 말합니다. 집으로. 강당으로. 미술실로. 학교 어디로든.
 
카니스 베베:같이 가자. (시즈쿠 손에 들려진 박스를 본인이 들고가며.) 같이 가자고 하면, 망설이지 않고 같이 가자고 답 할거니깐, 너도 망설이지 마.
 
손에 든 박스가 사라지자 희미하게 놀란 눈을 한 시즈쿠는 고개를 끄덕이곤 먼저 걸음을 뗍니다. 미술실로 말이죠.
 
소란스러웠던 학교가 잠잠해진 것만 같습니다. 우리는 지금 아무도 없는 빈 학교 안을 걷고 있는 걸까요?
 
창 밖을 바라보자 운동장을 가로질러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이 보입니다.
 
운동장에 서 있던 골대와 나무들이 길게 늘어집니다.
 
해는 다시 아래로, 아래로 ….파란색이었던 우리들의 모습은 다시 붉은색과 노란색으로 얼룩덜룩입니다.
 
실수로 누군가 섞어 놓은 것만 같은 붉은 물감이 묻힌 것 같은 모습으로 미술실 문이 열립니다.
 
미술실에 들어온 시즈쿠는 선생님께서 건네 준 박스를 책상 위에 올려달라고 합니다. 정리하기 위해서겠죠.
 
카니스 베베:(올려달라는 말에,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선 책상 위에 들고있던 박스를 올려두며.)
 
키리가미네 시즈쿠:(고맙다는 말 이후로는 아무말 없이 묵묵하게 하나 둘 정리를 시작합니다.)
 
물어야 할 게 많지 않나요? 베베가 들고 있는 유인물에 적혀있는 멸망의 시간이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정말 모든 게 변할지 몰라요. 변한 채로 아무 의미도 없는 지구의 끝을 보게 될 지도 모릅니다.
 
키리가미네 시즈쿠:...몇 년 남았어? 세상이 다시 끝나기까지 말이야.
 
시선을 주지 않으며 말하는 시즈쿠, 이번에도 시즈쿠가 빨랐습니다.
 
카니스 베베:보건실에서 나왔을 때, 유인물에 4년이라고 적혀있더라.
 
선생님이 건네준 박스에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흰 도화지에 크레파스나, 물감. 먹과 색종이 같은 것들로 꾸며놓은 다양한 그림들이 시즈쿠의 손에서 정리되었다가 사라졌다가, 펼쳐졌다가를 반복합니다.
 
그리고 그 손이 멈추지는 않습니다.
 
시즈쿠는 다 알고 있으면서 모르는 척 묻는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듣고도 아무 반응이 없었습니다. 멸망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도. 과거가 달라졌다는 것도.
 
그리고 우리들의 사이가 그 때처럼, 되돌아 갈 수 없다는 것처럼.
 
키리가미네 시즈쿠:...둘이 같이 있어서 그래. (정리하던 손을 멈추고 베베를 보며 말하기 시작합니다.)
10년 후의 미래를 알고 있는 두 사람이 이렇게 가깝게 있어서 변동이 생기는 거겠지만... ...괜찮아. 위태롭지만 우리가 멀어진다면, 다시 멸망이 다가 올 시간은 10년 후로 되돌아갈거니까.
세상의 멸망을 만드는 존재는, 항상 멸망을 위할지 과거로 갈 것인지 고르는... 그런 다음 사람을 찾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 다음 사람, 즉 나의 이후에 결정하는 사람이 바로 당신이야. 베베.
 
반복되는 지구의 멸망은 막을 도리는 없는 모양입니다. 인간의 능력에서 벗어난 일이니까요.
 
상상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고 위협적인 존재들에게 지구의 시간은 너무나 짧습니다.
 
그 존재들은 지구가 산산 조각이 날 때까지.
 
어쩌면 사람들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할 때까지. 계속해서 멸망을 반복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들은 그때마다 과거로 돌아오겠죠. 예정 되어 있는 멸망을 다시 겪기 위해서.
 
...이 반복에 무슨 의미가 있나요?
 
베베도 알다시피 시즈쿠는 많은 시간을 반복했습니다.
 
그때마다 세상은 또 다른 방법으로 무너졌고 시즈쿠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는 시즈쿠를 베베는 어떻게 다 이해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 다음 대상이 당신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시즈쿠가 그냥 넘길 수 있을까요?
 
키리가미네 시즈쿠:...그래서 하다못해 내가 멀어지기 위해서 그런거야. 시간이 너무 빨이 줄어들고 있어서. 멀어져야 돼. ...10년 동안, 베베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고 있으니까. 10년 동안,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고 있으니까. ...다들 행복했어. 삶을 사는 건, 생명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욕구니까.
베베도 알고 있잖아. 이제 성인이 되면,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해내는 일도 많이 있다는 걸. 그걸 위해서 우리는 멀어져야 돼. 그것뿐이야. (다시 박스를 정리합니다.)
 
카니스 베베:...다들 행복 할 때, 너는 행복했어?
많은 시간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그 순간에 너는 행복했어?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 해내는 일이 많아지겠지, 당연히.
그런데, 그런 일들이 많아지는 그 순간에,
...그런 일들을 위해서 우리는 멀어져야 된다고 생각 안 해.
멀어지면 뭐 해.
 
카니스 베베:너가 내 곁에 없는데.
 
키리가미네 시즈쿠:...행복했어. 그래서 계속 과거로 가겠다고 세상을 멸망으로 내몬 존재에게 과거로 가달라고 했어. 내가 마지막 순간에, 당신이. ...베베가 죽고 세상이 멸망해서 그 순간이 슬프더라도. 내 곁에는, 10년 동안이나 같이 함께해준 베베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니었어. 내가 원하는 행복은 곁이 아니라도 오로지, 베베 당신이 오래 살면서 아무런 고통 없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그런 소식을. 아주 멀리서라도 들을 수 있다면 그걸로 됐었던 거야.
마지막 10년 후에, 삶에 질려서 멸망을 선택해도 괜찮아. 겨우, 겨우 나 때문에 남은 인생을 낭비하지 말아달라는 말이야!
 
카니스 베베:너 때문이라니, 낭비라니. 나는 너 덕분에, 시즈쿠 덕분에 내 인생을 살 수 있었어. 시즈쿠 덕분에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살 수 있었어. 너가 나에게 와줘서, 그래서 나는 살아갈 수 있었어.
행복했다고 말 해서 다행이네. 멸망 끝에는 내가 죽어 슬프지만 그래도 10년동안 함께해서 행복했다고 말 해서 다행이야.
죽는 그 순간에는 슬프지만, 그래도 행복해. 너와 함께여서. 그러니깐, 아주 멀리서 소식만을 들으며 10년을 살겠다는 말은 하지마.
나에게서 멀어지지마.
다가오는 멸망을, 함께 맞이하자.
혼자 도망가게 두지 않는다고, 혼자 도망가서 외롭게 만들지 않겠다고 했잖아.
 
카니스 베베:같이 도망가자.
 
키리가미네 시즈쿠:...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결국에는 도망가는 사람은 한 명만 될 수 밖에 없어. ...나도 이제 베베가 회귀를 한다면 여기서 기억은 끊어질거야. 베베 당신이 몇 번인지 몇 년인지, 정신차리기도 이전에 세상이 멸망하고 내가 죽는 걸 봐도, 괜찮아고 할 수 있을까...?
못할거야. ...왜냐하면... 왜냐하면... 항상, 당신은.... 베베는.... 나를 사랑해줬으니까... (주먹 쥔 손에 힘이 들어갑니다.)
몇 번이고 멸망을 맞이하고 포기하고 싶어도 내가... 나 때문에. 지금의 나처럼 몇 번이고 다시 되돌려서 또 내가 죽는 모습을 하염없이 봐야된다는 미래는 싫어. 그래서 일부러 정 떨어지도록... 말도 안하고 떠날려고 했는데...
 
적어도 지금이 아닌, 우리의 다음 과거를 위해서. 과거는 반복될 겁니다.
 
사람들은 '멸망' 에서 멀어지기 위해 더 오래된 과거로 가고 싶어했고 시즈쿠 역시 '멸망'에서 10 전의 과거를 선택했습니다.
 
알아요. 여기서 우리가 영영 이별한다면, 다음 과거에서도 이별이겠죠.
 
그 과거에서도 안녕이라면 그 다음 과거에서도 만나지 않을 겁니다.
 
카니스 베베:... (작게 웃음소리가 새어나오며.) 내가 너를 사랑해준건 알고있지만, 하나는 모르는거 같아서. 정 떨어지도록 말 안하고 떠나는거, 내가 정말로 정이 떨어질거라고 생각해? 나는, 너를 기다릴거야. 방학식날 아침에 떠난다면, 그 사실을 모르고 방학식을 한다면, 나는 너가 떠난 사실을 다른 이에게 들었더라도, 너에게 듣지 않은 말이니 스터디를 했던 그 자리에서 너를 기다릴거야.
방학식날 기다려서 너가 오질 않는다면, 방학 내도록 학교로 나와서 기다릴거고, 졸업 할 때까지 오질 않는다면, 그 상태로 성인이 되었다면, 나는 이 학교 선생님으로 들어와 다시 기다릴거야.
남은 10년 동안, 너가 내 곁에 없다면, 내 남은 10년은 너를 생각하며 너를 기다리는 10년이 될거야.
 
키리가미네 시즈쿠:...안 돼. 그래선 안된단 말이야... 의미없이, 10년을 아무 삶도 안살고 의미없이 버리겠다고? 다시 과거로 돌아온다고 하면, 여전히 10년 동안? ...그건... 그건 슬프잖아.
 
카니스 베베:그 10년동안 너가 내 곁에 없는데 무슨 의미가 있겠어.
그리고, 내 곁에 없더라도 의미 있어.
...내가 너를 계속 생각하고, 기다리잖아. 그게 의미가 돼.
 
키리가미네 시즈쿠:..그렇게 말해도, 난 이후로 만나지 않을거야. 기다리지마. 의미 없는 일일테니까. 나를 없는 사람으로 생각해.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였다는 걸로. 행복하게 살아야 돼. 그건 나없이도 가능한 걸. 성적도 좋고, 돈도 좋고, 유망한 사람. 어디서든 잘 해낼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시즈쿠의 목소리가 흔들리고, 떨리는가 싶더니 후두둑. 눈물을 떨굽니다.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면서 우는 시즈쿠의 모습 뒤엔, 어제와 같이 선명한 노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번 생의 마지막에서 분명 당신이 생각나겠지만 다음 생에는 당신과 내가 누구도 기억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만나지 못할 서로를 생각하며 끝을 맞이하는 건 전혀 낭만적이지 않으니까요. 그게 끊임없이 반복된다면 더더욱.
 
초라할 뿐입니다.
 
새삼스럽지만 그 모습을 보면, 시즈쿠는 반복되는 회귀에 이제 희망이 아닌 두려움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흘러가는 우리의 여름이 너무나도,
 
뜨겁습니다.
 
키리가미네 시즈쿠:...미안해. 내일 보자. 이렇게 몇 번이고 다시 살고 왔는데도 눈물도 못그치고 이런 일에...
 
멈추지 않은 눈물에 당황했는지, 시즈쿠는 정리하던 물건들을 내버려둔 채 베베를 지나쳐 미술실 밖으로 나갑니다.
 
오늘은 집에 데려다 주겠다는 말이 없습니다.
 
내일 또 보자는 말을 우리들만 알아 볼 수 있는 말로 손바닥에 적는 행동도.
 
웃으며 헤어지고, 내일을 기약하던 그 인사도.
 
노을에 길어지던 우리들의 그림자도.
 
달아오른 온도와 자전거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도…-
 
노을이 지는 창 밖의 풍경을 사진처럼 담은 미술실 안에 홀로 남은 베베는 정말 내일, 시즈쿠를 볼 수 있는걸까요?
 
우리들의 여름이 이렇게 끝나도 괜찮은걸까요? 다시 마주할 과거를 위해서?
 
베베는 깨닫습니다.
 
베베가 들고 있는 '유인물'이 가리키고 있는 멸망의 시간 번져서 새로운 숫자가 나타났다는 걸요.
 
2년.
 
멸망의 시간이 이제 고작, 2년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산치체크. 0/1
 
카니스 베베:
SAN Roll
기준치: 78/39/15
굴림: 3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
 
베베는 이제 어떻게 할 건가요? 특별한 행동이 없으면 다음날로 진행합니다.
 
카니스 베베:..내일은 볼 수 있는거지? 내일은, 만날 수 있는거지?
기다리지 말라는 말에, 내 대답 못 듣고 그냥 가버렸으니깐,
너의 말대로 하지 않을거야.
2년.
알고있겠지, 그러니 내일 나를 만나지 않을거지.
하지만 기다릴거야.
 
카니스 베베:그러니깐,
내일 만나자.
(묵묵히, 혼자 남아서 마저 미술실을 정리하고. 그대로 미술실을 나서고, 학교를 나서고, 집으로 향하며.)
 
완전히 학교에 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는가 봅니다.
 
시즈쿠는 바로 집으로 갔는지 길게 늘어뜨린 그림자조차 볼 수 없었고,
 
단지 베베의 곁에는 언제 저물지 모를 정도로 위태로운 노을빛만이 있을 뿐입니다.
 
...과연 정말로 이 선택이 옳은 걸까요? 이렇게 끝나도 좋을 여름일까요.
 
알 수 없습니다. 저무는 노을과 같이 여름도 저물고, 곧 세상도 저물어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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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학교는 예상대로 떠들썩합니다.
 
방학은 학생들에게 있어서 매우 기대되는 순간인가 봅니다.
 
특히 진학을 위해 공부를 많이 했더라면, 누구라도 쉬고 싶겠죠.
 
학생들은 교실에 모여 여름 방학식을 할 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베베도 마찬가지일까요?
 
당연하게도, 오늘 학교에서 베베는 시즈쿠를 만날 수 없었습니다.
 
학교에 나오지 않은 걸까요? 아니면 베베를 피하고 있는 걸까요?
 
베베와 시즈쿠가 만나지 않자 유인물에 적힌 멸망의 시간은 줄어들지 않고 여전히 2년입니다.
 
이대로라면 시즈쿠의 말대로 10년까지 되돌아가겠죠. 10년 뒤엔...
 
....
 
한껏 높은 습도와 온기를 자랑하던 교실 안 스피커에서 방송이 흘러나옵니다.
 
‘곧 강당에서 여름 방학식을 할 예정이니, 학생들은 모두 강당으로 모여주세요. 다시 한 번 알립니다. 곧 강당에서 여름 방학식을 할 예정이니, 학생들은 모두...’
 
기다리고 기다리던 방송에 반에 있던 아이들이 빠져나갑니다.
 
학생A: 우와 방학식이다. 빨리 가자!
 
학생B: 야 너네 집에선 복도에 뛰라고 가르쳤냐?!
 
학생A: 그러면서 너도 뛰고 있잖아!
 
선생님은 아이들의 줄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시고 소란을 잠재웁니다.
 
반 아이들의 표정은 찬란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행복으로요.
 
베베, 당신도 방학이니까 행복한가요?
 
카니스 베베:...시즈쿠가 있다면, 행복하겠지. (행복으로 빛나는 학생들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상반되게, 행복하지 않은 표정으로.)
 
방학식에 빠질 수는 없을테니까요. 베베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베베의 심정을 모르는지 선생님께서 베베를 부릅니다.
 
선생님: 카니스.
미안하지만, 미술실에 가서 아이들이 제출했던 숙제들을 가져다 올 수 있을까? 미술 선생님께서 미술실에 놓아두셨다는데 바빠서 가져오지를 못했거든. 방학식에 맞춰서 아이들에게 나눠 줄 예정이거든.
 
어제 시즈쿠가 미술실에 놓아두었던 그 박스를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어제 심부름을 같이 가는 모습이라도 보였는지 그냥 아이들이 다 나간 반에서 시킬 사람이 베베 뿐이었는지 그리 말씀하십니다.
 
카니스 베베:(미술실, 시즈쿠를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 장소.) 네, 선생님. (그 장소에 다시 가면, 다시 볼 수 있을까. 그런 희망을 가지고, 순수히 선생님의 부탁을 수락하며.)
 
선생님: 그럼 부탁해. 강당에서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선생님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들뜬 아이들을 데리고 강당으로 이동합니다.
 
...미술실에 가면 시즈쿠가 있을까요?
 
그렇게 울면서 가버린 시즈쿠의 얼굴을 다시 마주하는 것도 꺼림직한 일이 될 수 있겠지만요, 어쩌만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베베는 발걸음을 옮겨, 미술실로 향합니다.
 
미술실에 들어가자 어제와 똑같은 풍경이 보입니다.
 
나란히 놓여진 의자와 책상들. ...아무도 없는 미술실 내부.
 
다른 게 있다면, 창 밖에는 저물어가는 노을이 아니라 새파란 하늘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
 
탁자 앞으로 가 시즈쿠가 어제 정리해서 놓아둔 내용물들을 챙기도록 합시다.
 
카니스 베베:다르구나, 어제랑. 창 밖 풍경이랑, 미술실에 있는 사람의 수. (탁자 앞으로 걸어가, 시즈쿠가 정리해놓은 내용물들을 챙기며.) 시즈쿠... (문뜩 생각이 났는지.) 이제 어딜 가든 시즈쿠가 있을텐데, 시즈쿠가 따라올텐데, 내 곁에는 없네.
 
내용물을 챙기자면... 그림들과 글의 주제는 전부 '멸망' 에 관한 것입니다.
 
왜 이런 것들만 있죠? 이제는 이런 것들까지 바뀌어버린 걸까요?
 
생각을 해보고 싶다면, 지능 판정.
 
카니스 베베:
지능
기준치: 95/47/19
굴림: 4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
 
며칠 전 교실에서 문학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목소리가 생각납니다.
 
아. 그때 선생님의 말씀이 ‘멸망’이 주제였죠? 미술도 비슷한 과정인지 ‘멸망’을 주제로 한 걸까요?
 
조용하고 정체된 시간 속에 있는 것 같은 미술실 안에서 나풀거리는 종이가 박스 가장 구석에 향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관찰력 판정.
 
카니스 베베:
관찰력
기준치: 95/47/19
굴림: 6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숙제를 정리하다가 그림과 글들 아래에 놓여진 <원래 여름이란, 파도를 건너가는 것> 이라고 적힌 제목을 발견합니다.
 
푸른 하늘과, 여름 구름, 누군가의 뒷모습.
 
단아한 필체의 작문과 함께 그려진 그림.
 
우리는 반복되는 시간 속에 존재합니다.
 
우리가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이 더위. 혹은, 절망스러운 미래에 갇힌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서 해야 하는 일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벗어날 수 없다면 기다리기만 해야 하나요?
 
달라질 수 없다고 이미 만나버린 우리가 이별해야 하나요?
 
...문득, 종이 옆에 작은 크기의 종이 상자가 굴러떨어진 걸 알 수 있습니다.
 
확인해보나요?
 
카니스 베베:... (작은 크기의 종이 상자가 굴러떨어진걸 확인하고는. 그 상자를 줍기 위해 손을 내밀며. 살짝 떨리는 손을.)
 
작은 상자는 한 손 크기입니다. 베베의 큰 손으로는 작은 편입니다.
 
분명 굴러떨어졌지만 여러 군데 눌러진 자국이 나있습니다. 마치 누군가 손으로 여러 번 '쥔' 구김이요.
 
안을 열어보나요?
 
카니스 베베:... (안을 열어본다.)
 
안에서 나온 것은.
 
두 개의 반지입니다.
 
자세히 살펴볼려면, 관찰력 판정.
 
카니스 베베:
관찰력
기준치: 95/47/19
굴림: 7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좋아요. ...마치 한 쌍인 반지는, 어딘가 익숙합니다. 기억 속과 다른 건 모조품 특유의 느낌이겠죠.
 
그래도 그리운 느낌. ...그리고 반지 안쪽에 쓰여있는건 두 사람의 이니셜이 쓰여진.
 
당신에게 전하지 못할 마음을 여기에 담습니다.
 
여름 빛을 받아 반짝이는 한 쌍의 반지를 보면 기억이 떠오릅니다.
 
이전, 이 세계의 전에. 죽기 전에 눈을 감아도 보였던 빛을.
 
...
 
시즈쿠를 만나러 가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그림 안에 그려진 두 사람의 존재를, 반지의 주인을 베베는 이미 깨달았을 테니까요.
 
푸른 여름 하늘 아래의 두 사람.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으며, 그 누구도 방해하지 못했던 순간. 그 때.
 
시즈쿠는 베베가 무사히 여름방학을 맞이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겠지요.
 
그리고 또 아무 말도 없이 여름 하늘을 등지며.
 
이전과는 다른 헤어지기 위한 방향으로 작별할 겁니다.
 
그것이 세상, 아니 베베가 무사히 안전한 삶을 살아갈 순간이니까요.
 
<원래 여름이란, 파도를 건너가는 것> 을 다 읽은 베베의 발 아래로, 상자 안에서 종이 한 장이 떨어집니다.
 
2년.
 
여전히. 아직도 멸망까지 2년이 남았습니다.
 
하지만 베베가 지금 시즈쿠를 만나러 가면 시간은 다시 줄어들겠죠. 이번에는 몇 년이 남을까요?
 
10년에서 8년으로. 8년에서 6년으로. 6년에서 4년. 4년에서 2년. 2년에서.
 
…다음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남은 시간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몰라요.
 
고요한 미술실을 가득 채우는, 다시 안내 방송이 흘러나옵니다.
 
‘곧 강당에서 여름 방학식을 할 예정이니, 학생들은 지금 모두 강당으로 모여주세요. 다시 한 번 알립니다. 곧 강당에서 여름 방학식을 할 예정이니, 학생들은 지금 모두 강당으로 모여주세요.’
 
시즈쿠를 만나러가는 게 맞을까요? 예정되어 가까워지는 멸망을 뒤로하고?
 
아니면, 베베. 당신을 부르는 듯한 열아홉의 마지막 '여름 방학식' 에 가야 하는 게 맞을까요?
 
베베는 선택해야 합니다.
 
작열하는 하늘 아래에서 녹는다 하더라도...
 
혹은 깊고 깊은 바다에 잠겨 가라앉는다고 하더라도...
 
어쩌면 반복되는 계절을 기다린다고 하더라도...
 
이 선택이 모든 걸 결정할 겁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고 싶나요?
 
카니스 베베:시즈쿠.
너는 너가 하고싶은 말만 하고 떠났어, 나를.
내가 너를 떠나더라도, 설령 떠나지 않더라도, 나도 너에게 내가 하고싶은 말을 할거야.
그러니, 시즈쿠.
너를 기다리지 않고, 너를 찾으러 갈게.
 
...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열아홉 여름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다시 돌아 온 10년 전의 과거가 결코 아름답지 않을 거란 사실 또한 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만났습니다. 다음 과거에서는 슬퍼하지 말자고요?
 
그렇다면 다음 과거에서의 여름은, 누구를 사랑해야하나요?
 
...베베는 교문으로 달립니다.
 
흘러 나오는 안내 방송은 더 이상 들리지 않습니다.
 
선생님께서 부탁했던 심부름도. 열아홉의 여름 방학식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밖으로 나오자 여름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무더위가 피부 위에 내려 앉습니다.
 
곤두박질치는 것만 같은 푸른 하늘이 시야에서 지나쳐 흘러갑니다.
 
멀리, 시즈쿠의 뒷모습이 보입니다.
 
교문을 막 나가려고 하는 모습. 이번에 놓치면 다시는 보지 못할테죠.
 
시즈쿠는 '다음 과거' 를 위해 베베를 떠나려고 했으니까요.
 
베베는 교문을 넘어가려는 시즈쿠를 잡아세울테죠.
 
...해야 할 말이 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지금 바로 지구가 멸망해버린다 할지라도 반드시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베베는 시즈쿠에게 무엇이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게 원망이든, 질책이든. 슬픔이든 무너져 버릴 뻔한 애정이든.
 
말을 해봐요. 무엇이든 말해봐요.
 
카니스 베베:시즈쿠.
(너를 불러 세운 나를 보며 너는 모르겠지. 내가 너에게 어떤 말을 할지. 너는 생각하겠지. 내가 너에게 할 말이 원망일지, 질책일지, 슬픔일지, 무너벼 버릴 뻔한 애정일지. 내 말을 듣기 전에 너는 아무것도 모를거야. 내가 무슨 말을 할지, 무슨 말을 하기 위해 너를 만나러 왔는지.)
 
키리가미네 시즈쿠:...! (베베의 목소리가 들리자 흠칫 놀라며 그제야 더듬더듬 말합니다.)
왜... 왜? (혼란스러운 얼굴입니다.) 왜... 왔어? ....왜? (그리고는 이내 미술실 때처럼 격앙된 표정입니다.) 왜... 왔어! 베베, 당신과 내가 함께 있으면 세상이 멸망한다고 ...말했잖아. 당장... 방학식 들으러 가야지... 선생님께서 걱정하실거야.
 
카니스 베베:(그건 바로 고백하기 위해서야. 지금 이 순간, 나는 너를 만나러 와서 이제 이 세계는 멸망하고 말거야. 그 순간, 그 순간이 오기 전에 너에게 할 말은 고백이야.)
너가 몇번이든 몇년이든 이제 더 이상 그 숫자가 세어지질 않을정도로 나와 10년을 함께하고 내 죽음을 끝으로 맞이했어. 그 10년을 보낼때마다 너는, 나에게 고백을 받았어. 나에게 사랑을 받았어. 근데, 지금의 순간에서 아직 받지 않았잖아, 내 고백.
이제 곧 멸망할거야, 너 말대로. 그러니 답 해주지 않아도 괜찮아. 하지만, 내 고백은 꼭 너에게 전해야 해.
선생님께서 나에게 하신 부탁들이 굉장히 많았어. 하지만, 전부다 거절했어. 반장은 물론이고 학생회장까지도. 그런데, 10년 전 받았던 그 부탁만은 거절하지 못했어. 거절 할 수 없었어. 거절 할 이유가 없었거든. 거절 할 이유를 없애준게, 너야. 시즈쿠.
너를 만난 순간부터 너를 좋아했어. 이상하더라, 기분이. '첫눈에 반했다' 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이 이상했는데, 그 이상한 사람이 너무나도 가까이 있더라.
다음 날을 만들어주고, 다음 달을 만들어주고, 다음 해를 만들어주고, 다음 인생을 만들어줘서 고마워. 10년동안 나와 함께 해줘서, 고마워. 계속 나와 함께 해줘서 고마워.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기다려줘서 고마워.
 
카니스 베베:사랑해, 시즈쿠.
 
키리가미네 시즈쿠:... (무슨 말을 할려는 지 입이 뻐끔거립니다. 당황하지만, 익숙한 말. 당연하죠. 매 이번 여름에 고백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매번 뛰는 심장 소리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나도 사랑해. ...사랑해서 그랬어. ...나는 두려워. 두려웠다고... 나를 평생 기다릴 베베의 모습도 두려웠고, 내가 몇 번이고 죽는 걸 볼 베베의 모습도 두려워서...
...어떻게 해서도 우리가... 이 연을 끊어낼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인정하기 싫었어. 어떻게 해서든, 다음 과거에서는 서로 잊자고, 다시 되돌아온다면, 그게 몇 번이라도 나는 바로 찾지 못할 곳으로 떠날거라고 생각했어. ...
인정하기 싫었다고... 무슨 말인지 알잖아... 결국 서로를 기다린다면, 이 삶이 의미가 없어지는게 싫었어! 그 누구를 위한 과거가 아니게 될까봐. 무서웠다고...
 
카니스 베베:이 고백을 전하지 못한 삶이, 더 의미가 없는 삶이 되버려. 나에게는. 이제 의미 있어. 시즈쿠가 내 옆에 있지 않아도, 내가 항상 시즈쿠를 생각하지 않아도, 내가 항상 시즈쿠를 기다리지 않아도, 의미 있어. 내 고백을 너에게 전했으니깐, 그걸로 내 삶은 의미가 생겼어.
그 누구를 위한 과거가 아니게 된다니, 항상 나를 위한 과거를 만들어줬잖아. 항상 나를 위해 과거를 만났잖아. 나도 알고있어, 시즈쿠가 나를 사랑한다는 거. 그러니깐, 이제 내 차례야. 시즈쿠를 사랑하는 내가, 시즈쿠를 위한 과거를 만들어줄거야.
 
키리가미네 시즈쿠:...그 끝에 내가 죽는다고 해도? 어떻게 해서도 멸망을 막을 방법을 찾지 못한다고 해도? ...이상해, 평소의 베베라면, 그런 감성적인 말이 아닌 이론적인 말을 했을거야. ...하지만 (눈을 감고, 다시 느리게 뜹니다. 마치 사랑스러운 것을 보는 것 같이요.)
알고있어. 왜냐하면, 내 앞에선 항상 그래줬으니까.
 
카니스 베베:이상하지. 평소의 나라면, 이론적인 말들만 했을거야. 선생님 질문에 '수업과 상관없는 질문에는 대답 하지 않습니다.' 라고 답 하는, 그런 이론적인 학생이였으니깐.
하지만 그 뒷말을 말을 하게 되었어. 그런 사람이 되었어. 그러니깐, 책임져줘. 시즈쿠.
 
키리가미네 시즈쿠:정말 이상한 사람, 그래서 좋아했어. 그래서 사랑했고, 그래서 몇 번이나 다시 만나고 몇 번이나 새로운 시간을 보내게 했어.
...불확실할지 몰라. 앞으로 나는 베베가 몇 번이나 나를 위해 과거로 가는지 기억에 없어질지도 모르고. 얼만큼 괴로울지 몰라서, 빨리 베베 당신이 멸망을 하도록 기다리는 사람이 될지도 몰라.
그러면서, 이 어중간한 인과 때문에, 나랑 있으면 다음 과거에도, 곧 멸망이 올지 몰라.
현재만을 생각해선 안 돼. 그 끝에 당신이 괴롭고, 그게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게 참을 수 없이 아파.
 
카니스 베베:나는, 벌을 받는거야.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과거들에서, 너를 아프게 했잖아. 내가. 그러니깐, 그에 대한 벌을 받는거야.
 
현재만을 생각하면 안된다니. 미래는 현재가 만들어내. 지금 내가, 너를 붙잡고 고백 하는 현재가, 멸망하는 미래를 만든 것처럼. 미래가 만들어지는 것을 위해 현재를 살아가진 않아.
 
그리고, 무엇보다, 시즈쿠와 함께 할 수 없는 미래보다, 함께 할 수 있는 현재가 더 좋아.
 
시즈쿠는 또 울 것만 같은 표정입니다. 그러나 그때처럼 베베를 밀어내지는 않습니다.
 
그야 우리들은 사실 마냥 서로를 기다렸으니까요. 수없이 반복되던 멸망 속에서도 함께였으니까.
 
키리가미네 시즈쿠:...함께 지내게 해줘. ...같이 걷고, 옆에 있게 해줘.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집니다.) 책임지게 해줘. 혼자가 아닌, 둘이서 같이 여름을 보내게 해줘. 사랑하고, 사랑받는 삶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봅니다. 지금의 베베는, 너무나 눈부신 태양과 같습니다.)
그랬구나... 나는... 단지, 베베 당신이 삶을 살아가줬으면 하는 게 아니었어. (어쩐지 희미한 미소를 짓는 거 같습니다. 모든 걸 다 깨달은듯이요.)
...몇 번이고 반복될 회귀 끝에서, 나를 미워할, 미래를 두려워했던거구나. 당신에게서 내쳐지는. 그런 미래를 제 멋대로 생각했구나...
...사랑해요. 카니스 베베, 당신의 고백만큼, 여러 날의 고백과 함께. 저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제 고백도 받아줄 수 있나요?
 
카니스 베베:당연하죠, 키리가미네 시즈쿠. 시즈쿠, 당신을 사랑합니다. 멸망하는 그 순간도, 그 이후에도.
 
(살짝 웃으며, 대답을 하며. 그리고는 시즈쿠에게는 익숙할, 여름 빛을 받아 반짝이는 한 쌍의 반지를 보여주며. 서로의 이니셜이 새겨진.)
 
각자 주인이 있는 반지라고 생각하는데, 주인이 누구라고 생각해?
 
키리가미네 시즈쿠:... ...(반지를 보더니 마치 그리운 것을 보는 표정입니다.) ...발견했구나. 아무도 발견하지 못할줄 알았는데.
마음이 타들어갈 때마다 혼자서 상자를 쥐다가 놓았어. 그리워해서 비슷한 걸 사서 두었고. 그게 내 마음을 다시 파도에 삼키게 만들기도 했지만. ...몇 번이고 베베에게 쥐어주고 싶었지만, 전하면 안되는 마음....이었던 것.
(의연하게 말합니다.) 멸망하더라도, 이 사랑은 영원 불변할 것을, 맹세합니다.
 
카니스 베베:운동장에서 나에게 손을 흔드는 너도 발견했는데, 반지는 당연히 발견 할 수 있지.
 
(너가 하는 말에 조용히, 듣고있어. 이내 의연하게 대답해주며.) 멸망하더라도, 이 사랑은 영원 불변할 것을, 맹세합니다. 시즈쿠, 당신에게.
 
키리가미네 시즈쿠:...(역시 베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왼손을 베베에게 향합니다.)
 
베베는 어떻게 할건가요?
 
카니스 베베:키스해도 돼?
 
키리가미네 시즈쿠:...(수줍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몇 번을 되돌아왔어도, 변하지 않은 모습입니다. 10년 전, 첫키스를 할 때와 똑같은 표정과 몸짓입니다.)
 
카니스 베베:귀여워. (그런 모습이 살짝 웃음이 나오며. 나에게 내밀어준 왼손 약지 손가락에 시즈쿠가 주인인 반지를 끼워주며, 살짝 허리를 숙여 시즈쿠와 눈높이를 맞춘 후에 천천히, 천천히 얼굴을 가까이 하였고, 이내 입술을 맞닿아보며.)
 
키리가미네 시즈쿠:(반지가 끼워지자, 아무것도 끼워져 있지 않았던 약지가 원래부터 허전한 것마냥 반지가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 있습니다.) (눈을 감으며, 키스를 받습니다. 여름의 열기보다 더 달아오르는 뺨, 아지랑이 보다 더 울리는 심장소리, 곧 바스라질 세상의 모든 것들 중에 지금 우리들이 가장 행복할 거라는 생각과 함께 맞닿은 입술에서 서로의 숨이 교차하고, 떨어집니다. 찰나와 같은 순간이 지난 것 같습니다.)
...(환하게 웃습니다. 항상 희미하게 짓던 미소가 아니라, 그의 곁에서만 짓던 미소를 말이죠.)
 
시즈쿠가 베베에게 다가서서 말없이 베베의 손바닥에 자신의 손가락으로 글씨를 씁니다.
 
두 사람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가, 글씨를 쓰기 이전에 무언갈 쥐어주는 행동을 대신하듯 빛납니다.
 
...
 
시즈쿠의 행동이 끝나고 나면 푸른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합니다.
 
마치 …그때의 그 여름 노을처럼. 하지만 이게 아름다운 노을이 아니란 걸 알아요.
 
세상은 멸망할겁니다. 베베와 시즈쿠의 만남에 의해서. 맺어짐에 의해서. 그리고 다시 시작할테죠.
 
...그러나, 우리.
 
다음 이 과거에서도 이 마지막 말만은 잊지 않기로 해요.
 
시즈쿠가 매순간마다 베베, 당신의 손에 말 없이 적었던 이 말을.
 
' 내일 만나자 '
 
Ending 1. 멸망한 세계에서 우리는 또 내일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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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즈쿠, 베베 : 로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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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셨습니다!